먼 곳에 와 있는 내게, 친구들이 묻는다. “거긴 지금 몇 시야?” 그럼 생각을 고르고, 답장을 한다. "음..여긴 몇시냐면, 한국시간에서 11시간 더하면 돼!" 한 달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매번 같은 시차에 살던 친구들과 다른 시간 속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처음 2주일은 아침 6시만 되면 배가 고팠다. 11시간의 시차 속에서 몸은 기억을 달리하지 않아, 배가 고플 때를 꼬박 챙기고 밥을 달라 울어댔다.
한국에서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른 시차 속에 있다. 잠에 들고 잠에 깨고, 그 패턴을 달리한 지 한 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공기에도 시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친구들은 하나의 질문을 더 얹어 건넨다. “거기 날씨는 어때?” 그리고 덧붙인다. “어휴. 한국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미세먼지 때문에 고통이라고 했다. 좋은 공기가 섞인 사진을 보낼 때면 친구들은 산소 많이 마시고 오라고 흑흑 울며 말했다. 그럼 난 마무리 인사로, 마스크 꼭 챙기고 다니라는 말을 건넬 뿐이다.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하는 흐린 풍경이 실감 나지 않아 짐작되는 마음으로만 걱정을 보낸다.
남미에서 하늘은 비가 오는 때를 제외하곤 언제나 맑음이다. 얼마 전 오래 햇볕 아래 있던 날은 나시 자국을 따라 살이 그을렸다. 햇볕을 그토록 오래 쐬어 본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길을 걸을 때마다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걸었던, 햇볕이 부서지듯 온 거리에 가득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을 떠올렸다.
‘좋은’이란 뜻의 부에노스와 ‘공기’라는 뜻의 아이레스, 두 개가 섞여 도시의 이름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겐 아주 좋은 안부 인사로 여겨졌다. 파란 하늘과 어릴 적 꿈인 듯 만지고 싶을 만큼 뭉게뭉게 피어 있는 구름들. 맑은 하늘 아래에서 한국의 흐린 하늘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까지 남은 시간을 괜스레 가늠해본다. 한달 남짓한 시간. 아주 꿈같은 일이지만, 근사한 안부 인사를 처음으로 건네고 싶어졌다. 안녕, 부에노스아이레스. 안녕 좋은 공기.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과 마스크를 쓴 거리의 사람들, 하지만 그 안에 섞여 들여진 내 모습이 상상이 가질 않아 조금 슬퍼진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