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일학년 때, 짝꿍은 날 '다다'라 불렀다.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그애 뿐이었다. 그 호칭 하나에 나는 내가 '지구에서 한아뿐'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애는 수업시간, 내 옆에 앉아 재밌는 이야기를 속삭였다. 웃겼다기보단 그냥 우린 죽이 너무 잘 맞았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조금은 우울한 색채를 마음에 꼭 숨기고 살았지만 그걸 들킨 건 서로뿐이었다.
그애는 나의 정리되지 못한 눈썹을, 칼로 슥슥 잘라주며 "거봐, 정리하니까 예쁘지?" 하고는 주변 친구들에게 나를 내보였다. 친구들은 다른 사람 같다고 말했다. 눈썹이 정리되든 말든, 그것보다 그애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준다는 게 참 기쁘기만 했다. 새로운 색으로 나를 칠하는 기분이었다.
그애와 나 사이엔 반 친구 A가 있었다. A는 그애와 나에게 히스테리를 자주 부렸었는데, 우린 그냥 웃어넘겼다. 어떤 도덕적 판단도 친구보단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까. 작은 울타리에서 관계가 주는 희열과 두려움은 내 세상 전부를 지배하곤 했으니까.
그렇게, 그애와 난 서로의 결핍을 보듬어줬지만 끝내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진 못했다. 그애와 졸업을 앞두고 찍었던 스티커 사진 속에서, 내내 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찰나는 내 마음에도 오래 캡쳐되어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누구세요?", "누구게?" 전화 속 목소리는 처음이라 알아듣지 못한 난, 다른 친구의 이름을 말해버렸다. 친구는 그애였다. 그앤, 아주 서운한 목소리로 근황을 말하곤, 금방 전화를 끊어버렸다. 알아채지 못한 나를 얼마간 많이도 원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3년, 그 애는 틈마다 나에게 연락을 해와, 우리가 서로에게 줬던 CD를 이야기했다. 친구가 구워줬던 CD, 그리고 내가 구워줬던 CD 그 안에 적힌 트랙리스트엔 우리의 취향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었지.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
날 다다라 부르는 그 아이. 아직도 그렇다. 난 평범한 세계 속 등장인물 1이었다가, 그 호칭에 때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