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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혜 Dec 07. 2023

상만 받은 기사

  

  기사가 노트북 안에서 한 달 내내 잠자고 있다. 콜콜. 도통 깨우는 사람이 없다. 깨워달라 해도 답이 없다. 지난 11월 3일, 지역신문컨퍼런스가 대전에서 열렸다. 컨퍼런스는 기획취재 공모전을 개최했다. 정확한 명칭은  2023 지역신문컨퍼런스 <청년기획 프로젝트> 공모전이다. 우리 팀은 기사를 썼고, 상을 받았다. 그러나 기사를 어디에도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최 측은 기사 공개 계획이 없다고 한다. 10곳 이상의 언론사에 투고요청을 했다. 거절하거나 답이 없다. 말 그대로 상만 받은 기사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외벽에 붙어있는 공고문



여름, 발견

  기사 쓸 생각은 없었다. 지난 6월, 용주골에 갔다. 파주에는 용주골 성매매집결지가 있다. 파주시는 집결지를 폐쇄하려고 시도 중이다. 나는 폐쇄를 막으려고 갔다. 국가가 시민의 생활터전을 부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집결지에 도착했다. 당황했다. 벽에 피켓을 붙이는 사람들, 그들 사이서 오고 가는 대화, 서로를 소개하는 방식과 태도, 모든 게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가 있었다. 내 생각과 행동이 끊임없이 서툴렀다. 모르는 게 많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연대자로 갔지만 관찰자가 되어야 했다. 발언대에 오른 사람들의 문장을 곱씹었다. 폐쇄를 왜 반대하는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오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참여하지 못했지만 들었다. 사적인 대화가 발언대에서의 외침과 다르지 않았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외벽에 붙어있는 피켓



가을, 시작

  기사를 쓰기 시작한 건 가을이다. 용주골 관련 오보가 많았다. 현장과 보도를 비교했다. 연대자를 업주라고 보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업주에게 세뇌당한 사람들이 폐쇄를 반대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인터뷰양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보도는 시의 말을 빼곡하게 기록했다. 성노동자의 말은 드문드문 전해졌다. 소문도 많았다. 나는 성노동자의 이야기를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보고 들어왔다. 내가 기자라면 용주골 성노동자의 상황을 잘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기획취재 공모전을 발견했다. 집결지에서 만났던 사람에게 공모전 링크를 슬쩍 보냈다. 용주골에 처음 간 날, 대화 나눴던 사람이다. 집 가는 지하철에서 나눈 대화가 재밌었다. 그 사람의 어떤 분위기를 배우고 싶었다. 그는 내 부탁을 흔쾌히 허락했다. 그때부터 함께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취재

  성노동자 이외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파주시와 관련 단체들의 입장을 확인해야 했다. 동네 주민의 말을 들어야 했다. 공무원, 경찰, 시민,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건 거부했지만 용주골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용주골사태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달랐다. 그리고 그 해석이 있기 전에, 성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했다. 성노동 관련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했다. 성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대표를 만났다. 성노동자 당사자들로 이루어진 단체다. 현재 용주골 성노동자와도 연대 중이다. 대표의 생각을 들었다.

  네 명의 성노동자를 만났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달랐다. 그러나 전반적인 흐름을 확인했다. 시가 무언가를 추진하면 집결지 내 사람들이 위험해졌다. 입력하면 출력되듯, 시의 행동이 집결지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집결지에 공동체가 있었다. 내가 만난 네 명의 성노동자는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줬다. 집결지를 중심으로 한 경험이었다. 자신을 비롯해, 함께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파주시에서 진행 중인 행사에 참가한 시민의 뒷모습. 매주 화요일마다 시민들이 집결지 내부를 걷는 행사다.



완성 후

  이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다. 제목은 <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난 여성, 그들의 이야기>. 9편의 기사다. 사진이 많다. 우리 팀과 여러 활동가들이 찍은 사진이다. 사진과 영상으로 투쟁을 기록하는 활동가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자주 보던 기사 형식과 다르다. 그게 단점인데,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이번주까지 언론사를 찾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인터뷰를 요청할 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이거 하면 공론화되나요?"라는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을 '내가 하는 말이 왜곡 없이 사람들에게 공개되냐'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그럼요"라고 대답했다. 왜곡 없이 쓰는 건 원칙이고, 상을 받으면 주최 측이 기사를 어디든 공개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말하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모두 공개될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상을 받는 데에만 썼다는 죄책감이 있다. 기사가 공개되기를 바란다.



기사가 궁금하다면 메일주세욥

communication18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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