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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혜 Dec 11. 2023

가짜뉴스 없이 토론하기

모호한 단어 말고 명확한 비판으로


  언어가 없으면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고, 인식하더라도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을 짓고, 언어를 만든다. 어떤 언어는 가려진 문제를 드러내고 논의를 이끌어낸다. 일상에 흩날리는 문제를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도와준다. 토론할 수 있도록 틀을 잡아준다.


  반면 어떤 언어는 우리의 토론을 흙탕물로 만든다. 언어의 정의가 모호할수록 더 그렇다. 말하는 이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니 토론을 할 수도, 대안을 낼 수도 없다. 토론장에 셔터를 내리는 것이다. 우리가 과감하게 넘어서야 할 언어다.





['가짜뉴스'에 갇히다]


  무관해 보이는 두 단어가 합쳐지자 보이지 않던 현실이 드러난다. '가정폭력'은 안식처라 여겨지던 가정에서 폭력이 발생한다는 현실을. '감정노동'은 사적영역으로 여겨지던 감정이 노동시장에서 철저하게 관리되어 상품화되는 현실을.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가정 내 벌어지는 폭력을 '남의 집 가정사'로 보지 않는다. 노동시장이 노동자의 감정을 억제하는 상황을 '일상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폭력의 현장으로 인식한다.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본다. 대안도 등장한다. 새로운 명명이 새로운 개념을, 나아가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언어가 가진 힘이다.


  그러나 어떤 언어는 우리를 가둔다. 나는 학교에서 토론할 일이 많다. 토론을 할 때마다 '가짜뉴스'라는 언어가 늘 등장한다. 특히 정치유튜버와 언론을 비판할 때, '가짜뉴스'는 수식어처럼 등장했다. 비판하려는 대상 앞에 꼭 '이러한 가짜뉴스는'이라는 말이 붙었다. 우리의 습관이었다. 그만큼 가짜뉴스라는 언어는 심각성을 전하는 데에 수월했다.


  그러나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무엇이 심각한 지를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짜뉴스 딱지가 붙은 것들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이유불문 가짜니까 가짜였다. 들여다본들 가짜냐 진짜냐에서 토론이 머물렀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없어져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이런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비판하고자 언어를 꺼내 들었는데 무엇을 비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토론이 겉돌았다. 비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짜뉴스라는 언어에 갇힌 것이다.





[가짜뉴스 논쟁]


  가짜뉴스 논쟁은 참과 거짓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력이 공적뉴스를 어디까지 통제, 검열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문제다.


  가짜뉴스라는 언어는 16년부터 정치권에서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가짜뉴스 관련 법을 제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2018년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이, 5월에는 자유한국당이, 가짜뉴스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정치인들은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공직선거법 등에 가짜뉴스를 처벌할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가짜정보법'을 재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8년 이후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게 가짜뉴스를 심의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려는 입법적 시도가 있었다.

  여야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가짜뉴스의 정의가 쏟아졌다. 언론이 아니면서 언론인 척하는 콘텐츠가 가짜뉴스다. 언론이 거짓 정보를 보도하면 그게 가짜뉴스다. 등등. 가짜뉴스의 정의와 범위는 말하는 이에 따라 달라졌다.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과정은 언론통제, 사전검열로 번질 수 있었다. 헌법에 위배되는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기에, 가짜뉴스 관련 입법적 시도는 모두 무산됐다.

 

  가짜뉴스라는 언어가 한국에 들어올 무렵, 언론학계는 해당 용어 사용을 우려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해당 용어가 언론 불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다른 하나는 해당 용어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뉴스타파가 윤석열 검사의 '봐주기 수사 의혹'을 보도했다. 이 때 녹취록 일부를 편집해 보도했다. 대통령실부터 시작해 난리가 났다. 악의적인 편집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실은 뉴스타파의 보도가 가짜뉴스라며 '희대의 대선공작 사건'이라 규정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칠게 말해 뉴스타파를 폐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가짜뉴스를 제재해야 한다며 직접 실행에 옮겼다. 뉴스타파의 녹취록을 보도한 MBC 등, 여러 언론사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검찰은 언론사와 기자를 압수수색했다. 가짜뉴스라는 이유에서다. 





[가짜뉴스를 누가 심판하나]


  기자의 역할은 중계가 아닌 진실을 쫓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진위를 가려야 할 사안에 '가짜뉴스'라는 언어 사용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질문이 따를 수 있다. 만약 기자가 의도적으로 불법한 행위를 했다면? 위법이 발생했지만 정당한 언론 활동에 해당한다면? 법체계는 이미 이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 두었다. 뉴스타파의 보도과정에서 위법이 발생했다면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언론중재법 규율 대상이다. 다시 말해 가짜뉴스 관련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 : 미디어 오늘, 6월 28일자 기사 <언론재단 ‘가짜뉴스 신고센터’ 40여일 접수 건수 불과 13건>
한국 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가짜뉴스 피해 신고·상담센터'

  

   그러나 가짜뉴스를 심의하려는 시도는 끊이질 않는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가짜뉴스를 대응하겠다며 '가짜뉴스 대응 정책'을 공개했다. 그 후 5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가짜뉴스가 많아지고 있으니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었다면 신고하라는 것이다. 이 신고센터는 우리에게 '우리 주변에 가짜뉴스가 도사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언론을 우리의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짜뉴스 없이 토론하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언론불신의 시대, 당장 내 문제도 고민하기 힘든 불안의 시대. 믿을 수 없고, 고민할 수 없다. 이러한 시대에서 '가짜뉴스를 없애자'는 말은 마치 최선의 외침처럼 들린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설명해 주는 듯한 쾌감도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라는 단어는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을 낙인찍고, 우리의 논의를 차단했다. 


  언론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또 우리에게는 가짜뉴스를 찾아낼 의무가 없다. 우리는 가짜냐 진짜냐 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사기꾼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고, 기자가 하는 말의 맥락을 따진다. 우리는 보도의 타당성을 본다. 


  한국어만 사용해야 하는 게임이 있다. 영어나 외래어를 사용하면 게임에서 진다. 이 게임을 우리의 토론수업에 적용해보고 싶다. 토론할 때 가짜뉴스라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사용하는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에게서 새로운 언어를 꺼내기 위해서다. 우리는 옳은 언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더 정확한 언어로 비판할 필요가 있다.

  기사에 사실과 다른 정보가 있다면 '오보'다. 정보가 과하게 표현되거나 생략, 삭제되었다면 '왜곡'이다. 취재과정에서 기자가 윤리과정을 어겼다면 '윤리위반'이다. 악의적인 거짓정보가 보도됐다면 '허위조작정보'다. 눈앞의 문제부터 제대로 지적해야 한다. 우리가 언론의 문제를 명확하게 짚어낼 때, 옳은 언론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문제를 짚어낼 언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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