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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혜 Sep 26. 2024

 『불멸의 인절미』 와 먼 여행

한유리 작가의 책,  『불멸의 인절미』 를 읽던 중

  잠깐 물을 마시자. 너무 슬픈 글을 마주해 버린 것 같다. 너무 슬퍼 다른 짓을 하려 애썼다. 물을 마시러 가는 길에 방금 만난 글자들이 내 마음을 짓눌러 눈물을 낸다. 어쩌자고 이 슬픈 사실을 언어로 만들어 세상에 내어버린 걸까. 소설이 이렇게 아플 수 있나. 작가를 원망하다가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한 번쯤 마주해 보는 것도 좋지”


  한 번쯤. 그 한 번이 싫어 여태 피해온 슬픔이었다. 자신과는 온통 다른 자들 사이에서, 겹치는 어떠한 언어와 신호도 없이, 그가 이 좁디좁은 집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온몸이 일렁이는 파도가 된다. 눈물이 쏟아지기 일보직전이라는 뜻인데, 그럴 때면 나는 멀리 도망치고는 한다. 그렇게 도망친 곳에서 이 글을 발견한 것이다. 책이 나의 멱살을 잡고 “한 번쯤 마주해 보는 것도 좋지”라고 속삭인다.


  그는 행복할까? 그는 날 좋아할까? 그는 편안할까? 온갖 질문들이 그를 향할 때, 나는 습관적인 후회를 한다.


  ‘아, 어쩌자고 이렇게…’


  생각이 한번 더 멀리 간다. 예전에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파아란 포스트잇에 “위계 없는 사랑을 꿈꾼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위계 없는 사랑을 꿈꾼다는 건, 슬퍼지려는 다짐과도 같다. 가해자인 나는 나도 모르는 권력을 휘두르며 마음에는 오로지 ‘사랑’ 뿐이다. 그러니 나는 정말이지 가해자다. 사랑하는 저 자의 언어를 해석하지 못해 미안한데, 질문하는 방법을 몰라 또 미안하다. 그에게 미안할 때면 나는 나를 가능한 힘들게 만든다. 그럼 조금 마음이 나아진다. 그러니 나는 그와 동등하지 않다. 무엇을 바꿔야 너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전에, 나의 행복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잠깐 생각을 멈추려 핸드폰을 들었다. 고속도로 위에 덩그러니 떨어진 한 돼지가 쌩쌩 지나가는 차들 사이에 있다. 피를 흘리며 잠자코 눈을 꿈뻑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내 손가락 아래 스치듯 지나친다. 동물원을 탈출해 차도 위를 위태롭게 달려 나가는 타조의 뒷모습이. 꼬리를 축 내리고 잔뜩 겁에 질린 강아지가 술 취한 남성의 부름에 하는 수 없이 다가가는 모습이. 몇 뼘 안 되는 목줄을 끊고 저 멀리 달려 나가고 싶은 하얀색 개의 안간힘이.


  대체 어쩌자고 이런 장면들이 내게 오는 걸까. 멀리 갈수록 깊게 다가온다. 나는 언젠가 훅 다가올 그것들을 모른 척, 자꾸 멀어지려 한다.

  책의 몇 장을 남겨두고 잠시 덮었다. 왜인지 나를 슬프게 만든 이 책이 나를 지켜줄 것 같아서 그랬다. 내가 정말 슬퍼질 때, 그때 이 책의 남은 글자들이 ‘거봐 그리 될 줄 알았어’하며 나와 멀리멀리 함께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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