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혜 Nov 03. 2024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말

지난해 2월, 박정혜·소현숙 노동자가 발언하는 모습. 두 노동자는 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현재까지 고공농성 중이다.

#1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문구를 처음 본 건, 지난겨울 구미에서였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불에 타던 날, 노동자들은 해고당했다. 두 여성 노동자는 공장 옥상에 올라 "고용승계"를 외쳤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그들의 외침을 내 작은 그릇 안에 담아보려 애썼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기업 닛토덴코의 자회사다. 닛토덴코는 한국정부로부터 50년 토지 무상 임대, 세금 감면 등의 각종 혜택을 받고 있었다. 국가의 지원과 노동착취로 6조 3354억 가량의 막대한 수익을 냈다. 승승장구라는 말도 어색할 정도로 엄청난 자본을 끌어들이던 공장은 지난 22년 10월, 불에 탔다. 사측은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을 챙기고 공장을 떴다. 공장의 모든 물량은 평택에 있는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겨졌다. 노동자들은 쫓겨났다. 고용승계는 없었다. 평택 공장에서 일하겠다고 외치는 자들에게 회사는 가압류 소송을 걸었다. 


  나를 쫓아낸 공장 꼭대기에서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라고 외치는 이들이, 내게는 벅찼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 추운 날 저 높은 곳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걸까. 노동자는 정말 공장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옥상 위에서 손을 흔드는 두 여성 노동자들을 우러러보았으나, 동시에 어려웠다. 



#2

  지난주, 친구와 대화하던 중이었다. 


  "결국 끝까지 회사에 남은 건 우리였다니까?"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던 친구가 마지막에 붙인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의 말과 내가 구미에서 본 풍경이 겹쳤다. 친구는 중소기업에서 상담 업무를 했다. 몇 달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친구와 친구네 부서 직원들은 해결책을 고민했다. 사내 노조가 있는 건 아니었으나, 다 같이 모여 회사에 따지고, 파업을 하는 등, 밀린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그러던 중 회사가 부도 직전에 다 달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들은 사장에게 찾아가기로 했다. 사장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내 친구와 그의 동료들은 당황했다. 친구 말에 따르면 사무실 한 층이 텅 비어있었다. 친구네 부서가 남은 일들을 처리할 동안 사장을 포함한 주요 직책들이 회사를 뜬 것이다. 정말이지, 끝까지 회사를 지킨 건 내 친구와 그의 동료들, 그러니까 상담실 직원들이었다. 불 탄 공장에 남은 두 노동자와 모두가 떠난 사무실에 남은 내 친구가 이상하리만큼 비슷했다. 



#3

  용주골에서도 그랬다. 용주골에서 내게 가장 많은 물음표를 남긴 장면은 "폐쇄되어도 끝까지 지킬 것"이라던 성노동자 H의 결의였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태도로, 몇 번이고 저 문장을 내게 건넸다.


  용주골에서 만난 한 상인의 말에 따르면, 한때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는 "박정희가 아가씨들에게 파카를 선물해 주던 곳"이었다.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가 외화벌이가 되니 국가는 집결지를 공공연하게 밀어줬다. 대통령이 와서 선물을 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 국가는 여성들을 내쫓고 있다. '여성인권'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치러지고 있는 '강제철거'는 수십 명의 생계를 끊었다. 내쫓긴 여성들은 살길 찾고자 이리저리로 흩어졌다. 다른 집결지로 가거나,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자가 되어 외국으로 갔다. 


  한편 남은 이들은 집결지를 지킨다. 내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 홀로 남겨질 동료를 생각하느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떠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일터는 내가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나의 동료가 있는 곳이니까. 그러니 함께 스크럼을 짜고 용역을 막는 것이다. 외부에서 '성노동'은 '노동'이라 부르는 것에서부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정작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은 영락없이 '노동'이다.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애착이 가고, 자주 상처를 내지만 때로 희망을 주는 일. 돈 벌려고 시작한 지독한 일이자 살 길 찾게 해 준 고마운 일. 그러니 이들은 "내 삶을 폐쇄하지 말라"며 집결지를 지킨다.


  다시, 고공농성을 하는 두 명의 여성 노동자들을 떠올린다. 이 추운 날, 저 높은 곳에서 농성을 하는 저들은 어떤 마음을 하고 있을까. 벌이가 끊기는 문제, 국가와 자본이 짓밟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문제, 동료를 지키는 문제, 내 가정을 책임지는 문제. 여러 문제들을 끌어안고 이들은 일터의 주인이 되기로 했을 테다. 



#4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말은 그렇게 조금씩 와닿았다. 그러던 지난 24일, 이 문장이 피부에 감기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노조 조합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이었다. 의자개수가 부족해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을 정도로 많은 조합원들이 모여 교섭장이 가득 찼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서울대병원 사측과 교섭을 하기 위함이다. 

  그날 병원장을 마주하고 발언하던 한 조합원의 모습이 진하게 남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가 떨고 있음을 인지했다. 사측의 무표정한 얼굴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감정은 시시각각 튀어나왔다. 그를 지켜보는 조합원들 모두 숨죽여 경청했다. 병원장을 상대로 말하느라 생긴 떨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소중한 걸 표현해 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간 서울대병원노조는 파업까지 결의하며 사측(병원)과 싸웠다. 서울대병원노조는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의료기사, 임상병리사, 설비기사, 청소 노동자, 급식 노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파업까지 결의하며 병원에 요구한 건 병원 정상화와 공공성 강화였다. 의사 집단행동 이후, 병원노동자들은 '땜빵'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맡은 업무와 무관한 곳에 투입됐다. 이를테면, 의사가 떠난 자리에 간호사들의 노동력이 투입됐다. 의사 집단행동 이전부터 간호사들은 의사업무를 떠맡으며 높은 노동강도를 버텨 왔다. 한데 이번 의료대란 이후, 간호사에게 그 책임이 모조리 전가된 것이다. 간호사들은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고, 환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에 처했다. 노동자들이 불안을 호소하자 병원은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인력충원, 어린이부터 무상의료, 구조조정 금지 등, 노조가 내건 요구들의 최종 목적지는 병원이 병원다워지는 것이었다. 


점심시간, 서울대병원노조가 직원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5

  하나의 직종, 하나의 사업장이라 해도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각기 다르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되는 게 없다. 밖으로도 안으로도 고군분투해야만 한다. 용주골은 오늘도 강제 폐쇄를 막는 방법을 두고 여러 이견이 충돌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맺은 관계의 형태는 수십 번씩 바뀐다. 내 친구가 속한 부서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부서 전체가 모회사로 고용승계되는 승리를 쟁취했으나, 새로운 부당함에 직면했다. '강성인 애들이 모인 부서'로 소문나며 사측이 감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또 사측이 동료들의 고용형태를 제각각 바꿔놓아 의견을 모으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어려운 걸 해낸다. 그 어려운 것, 그건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자본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규칙으로 자리매김한 세상에서, 이들은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사람을 가시화한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듯싶은 공간을 '관계'가 있는 공간으로 되살린다.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의지하기를 반복하며, 우리의 일터가 돈이 아닌 사람을 따르도록 시스템을 재구성한다. 그러니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인 곳에서의 일터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국가가 함부로 노동자를 쫓아내지 못하는 곳이자, 노동자들을 서열화하지 않고, '땜빵'취급하지 않는 곳이고, 관계가 서는 곳이다. 일터의 주인을 자처한 노동자들은 그리 될 것이며, 그러므로 나는 이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불에 탄 공장 앞, 현수막이 걸려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