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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mal Apr 16. 2020

크레타섬의 작은 예배당

My visit to St. Titus Chapel (티투스 채플)


어제는 예수를 따르고 오늘은 알라의 경전을 외며, 내일은 그리스정교에 심취하게 될 이가 있다 치자. 우리가 그 이의 속 사정까지 알 도리가 없다면, 그 이를 그저 주변의 성화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얕잡아 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예를 들어, ‘이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 종교에 매달리게 된 것일까?’ 와 같은 질문으로 말이다.


내가 크레타를 방문했던 당시 만났던 작은 예배당이 그러했다. 지금은 그리스정교회의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가톨릭의 치세(14~15세기) 아래서는 이곳에서 미사가 열리기도 했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이곳이 회교도의 기도 공간으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그 때 설치되었던 미나렛탑은 철거된 지 아직 백 년도 채 되지 않았다.


과연 미나렛탑만 철거하면 이슬람 건축이 기독교 건축으로 변신할 수 있는 걸까? 만약 탑만 철거해서 될 일이었다면, 미나렛을 제외한 예배당 공간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대규모 살육전도 불사하는 이 두 종교가 이렇게 쉽게 자리를 맞바꿀 수 있는 것들이었다면 도대체 종교와 건축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걸까? 쉽지 않은 질문들 때문에 나는 교회를 쉬이 떠날 수 없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종교 건축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를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독특한 공간 구성이 눈에 띄었다. 같은 동네의 다른 교회들은 전통적인 십자형 평면을 따른다. 하지만, 이 예배당은 전실과 예배 공간으로 나뉠 뿐이다. 따라서, 동네의 다른 십자형 교회가 그러하듯 극적으로 공간이 연출되는 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금빛 이콘화(icon)가 시선을 사로잡는 정도가 전부이다. 다른 교회와 같은 공간 연출을 상상했노라면 김이 샐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예배당의 창도 독특했다. 교회 건축에서는 보기 힘든 모양의 창호를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딘지 생경하다. 아마도 북유럽 스타일의 가볍게 처리된 스테인 글라스와는 달리 이 예배당에서는 밖으로 대포를 쏘기 위해 요새에 구멍을 뚫어놓은 듯이 창을 뚫어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알록달록 앙증맞은 창은 또 어찌나 아름답던지, 마치 우람한 근육질의 중세 기사의 손에 결투의 흔적 대신 새침한 네일아트가 대신 자리하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예배당을 나오면서, 내가 예배당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눈앞에는 제일 먼저 <그리스인 조르바>의대문호 카잔차키스의 장례행렬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보를 잃은 것 같아 비탄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 앞에서 거행되는 어느 선남선녀의 결혼식이 보인다. 개구쟁이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어머니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도 엉겁결에 축제를 함께 즐기는 어중이떠중이들도 보였다. 잠깐이었지만 참 예배당으로서 흐뭇했다.



예전에, 우리 사는 세상에 인간 박물관이 있다면 재밌겠다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성격이 고약하고 독특한 인간들, 기록에 남겨 후대에 길이길이 전하고 싶은 인간들을 한데 모으면 꽤 교육적일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예배당을 나오며 떠올린 상상에서 난 이 인간 박물관의 청사진을 보았다. 건축이 갖고 있어야 할 중요한 역할은 우리들의 생활을 잘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 예배당은 종교가 세번이나 바뀌는 서슬퍼런 세월을 견디면서,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우리 사는 세상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던가? 이 예배당은 우두커니 세월을 견디면서, ‘사람들은 왜 모이는가?’를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크레타 여행은 우연한 기회에 마련되었지만, 나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깨워주었다. 이 섬이 서양문명의 토대가 되어주었듯이, 어떤 이에게는 앞으로의 삶에 보습대일 땅이 되어주었다.


<청해부대 파병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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