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여행을 가고 싶었던 이유
얼마 전에 2018년 산 와인을 선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생산된 와인인데, 이름이 특이하다. Conundrum. 한국어로 표현하면 ‘풀리지 않는 문제’, ‘고민’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텐데, 불현듯 2018년에 나를 괴롭혔던 ‘고민들(conundrum)’은 안녕하신가 궁금해진다.
2018년은 내가 해외로 파병되었었던 해다. 전역을 1년여 앞두고도 진로가 정해지지 않아 마음이 참 많이 복잡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위안과 즐거움을 느꼈었다. 배 안의 생활이라는 게 단조롭고 따분하게 마련이라, 하루에도 여러 번 바다로 뛰어드는 편이 낫겠다.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독서가 참 많은 위안을 주었다.
내가 즐겨보던 책들은 세계사와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네루의 <세계사편력> 주경철 교수님의 <그해, 역사가 바뀌다> 같은 책들 말이다. 내가 세계사를 돌아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였다.
다둥이 아빠로 평생을 노동(작곡)하며 살아가야 했던 바흐의 이야기, 일확천금을 노리던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사실 종교적인 동기가 더 컸던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내가 그들의 삶을 어느 정도 오해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었다. 일단 그들의 삶은 이른바 ‘잘나가는’ 삶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세계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야 마땅할 것 같은 그들의 삶은, 들여다보면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더러는 아주 잔인하게 내팽개쳐진 채 끝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인생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혹은 ‘어쩌면 취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고민은 왜 나를 이토록 불안하게 했을까? 고민 한가득 끌어안고 귀항 일을 기다리던 날들이다.
시간이 지나 ‘성공을 추구하는 삶’과 ‘실패하지 않기 위한 삶’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좋은 곳에 취직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온전히 ‘내 인생’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실패하지 않은 삶’을 증명하려 하는 것일까 톺아보게 했다.
조금 생뚱맞지만, 나는 그 깨달음이 있고 난 다음부터 프랑스 파리 여행을 계획했다. 적어도 ‘자유, 평등, 박애’의 발원지에 가면 뭔가 주체적인 삶을 향해 방향키를 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내가 푹 빠져있었던 코르뷔제나 앙리 라브루스트 같은 건축가들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근대성’의 태동지에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물론 그렇게 쉽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었다.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여러 번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집중하지 못했다. 전시뿐만 아니라 여행 전반적으로 집중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미처 다 쓰지 못한 자기소개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산 캘리포니아 와인 병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로부터 얼마나 진전했는가 생각해본다. 내 인생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해결이 좀 되었을까? 술 좀 더 마시면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도 같은데, 부디 건투를 빌뿐이다. 나와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