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8를 알립니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졌다. 아주 미세한 온도의 변화였지만, 나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감정의 더듬이가 그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투가 조금 무뎌졌다. 그의 눈빛이 살짝 멀어졌다. 답장이 평소보다 한 템포 느렸고, 이모티콘의 개수가 줄었으며, 이름을 부르던 호칭이 흐릿해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겐 전부였다.
그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불안의 뿌리가 되었다. 그 불안은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고, 나는 그를 조여야만 숨이 쉬어지는 기묘한 구역에 갇혀버렸다. 불안이 지나치면, 사람은 통제를 시도한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관계는 누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는 순간, 추락할 수 있는 외줄 타기였다.
나는 위태로운 줄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사랑은 균형이 아니라, 여백에서 숨 쉬는 건데.
“어제 자기 전에 뭐했어?”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전날, 분명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잠들었는데도. 그는 의아하다는 듯,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어제? 자기랑 카톡하고 잤잖아.”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마. 카톡하고 바로 안 잤잖아. 유튜브 봤잖아.”
그의 집에 CCTV를 단 것도 아니고, 정말로 그가 뭘 했는지 아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그를 다그쳤다. 그의 하루의 끝마저도 내가 감시하고 싶었다. 나 아닌 무언가에 그의 시선이 가 있는 것이 끔찍할 만큼 싫었다. 그의 일상이 투명하게 나에게 보고되어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대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지쳤다는 말, 이 대화가 의미 없다는 말, 더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는 말.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헤어져.”
어느새, 헤어짐이라는 단어는 나의 입에 익숙하게 붙어 있었다. 진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그가 나를 얼마나 붙잡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그는 끝까지 나를 놓지 않아야 한다는 어린 집착 같은 마음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아냐, 내가 왜 자기랑 헤어져. 내가 더 잘할게. 응? 그런 말 하지 마.”
그는 처음엔 그런 말들로 나를 달래주곤 했다. 불안에 휩싸인 내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더라도, 그는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랑을 얻은 듯 안도했다. 그의 존재만으로 내 흔들리는 세계는 잠시라도 평형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나는 점점 시험의 강도를 높였고, 그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내가 감정을 쏟을수록 그의 표정은 지워졌다. 붙잡히던 손은 헐거워졌고, 나를 껴안던 팔은 힘을 잃었다. 어느 날부터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의 눈엔 결심이 담겨 있었다. 매번 헤어지자고 말하는 나에게 이제는 진짜 그 결말을 안겨주려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의 표정 하나에 내 불안은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리던 불안의 지진계가 이제는 사이렌을 울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3도쯤이던 마음의 불안이 8도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