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한다며 왜 그렇게 말해?

안녕, 나의 첫사랑

by 무연


우리의 관계를 굳이 요약하자면, 초반엔 용암처럼 뜨거웠고, 중반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고, 끝자락에 이르렀을 땐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다에서 같이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서로를 먼저 밀어내야만 했다.


나는 이 관계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끝맺음의 권한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더 많이 사랑했으니까. 내가 더 많이 헌신했고, 내가 더 많이 상처 받았고, 내가 더 많이 아팠으니까. 그래서 그가 조금씩 멀어져 가는 걸 보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를 시험했다.


“너, 정말 나를 사랑하니?”


내 말에는 늘 ‘그럼 이렇게 하지 마’라는 비언어의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나는 그가 끝까지 버텨주기를 바랐고, 그가 먼저 손을 놓지만 않기를 바랐다. 그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사랑했다고 말했으니까.


그날도, 그냥 별것 아니었던 싸움이었다. 어제 다툰 일이 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말다툼. 나는 그저 하루 자고 일어나면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 그가 받아주고, 이렇게 대충 얼버무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하지만 아침. 눈을 비비며 켠 휴대폰에는 짧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뭔가 사연이 길게 적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렇게까지 마음이 상했는지, 앞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이유 같은 것도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읽지 않았다. 아니, 읽히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 건 딱 한 줄이었다.

‘그만하자.’

그건 일종의 선고문이었다. 그가, 나보다 먼저 이 관계를 끝내버렸다는.


“XX.”


침대에 걸터앉은 채, 무심하게 욕이 튀어나왔다. 이 아름답고 싱그러운 아침에, 네가 그딴 식으로 내 하루를 깨? 나는 말이 막혔다.


그러니까, 너는 이 사랑을 그렇게 가볍게 봤다는 거지. 내가 아무리 너에게 애원하고 매달리고 울어도 그건 그냥 불편한 감정이었을 뿐이라는 거지. 나를 감당해보겠다던 그 말,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그 말, 다 거짓이었단 말이지?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어? 왜 그렇게 가볍게 끝내버렸어? 왜 마지막까지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어? 내가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날들,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네가 정말 몰랐던 거니?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거니?


나는 점점 추락했다. 그는 내게서 도망쳤고, 나는 그 빈자리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나는 더럽혀졌다고 느꼈다. 그의 이별 통보 한 줄에 내 존재 전체가 휴지 조각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나는 욕조 앞에서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했고,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며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어느새, 사랑은 미움이 되었고,

그 미움은 나를 향했다. 그를 탓하다가, 결국 나를 혐오하게 되었다.

든든한 사람의 손을 꽉 잡고 겨우겨우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산이 통째로 사라져버리고 나는 알몸으로 낭떠러지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회복은 단숨에 오지 않았다. 하루하루, 초 단위로 흘러가는 시간을 버티며 내 마음의 고장 난 부품을 하나씩 갈아끼워야 했다.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와서야 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감당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함께 버틸 수 있는 용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감당하려다 감정에 무너졌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사랑의 언어는 그 본질을 잃고,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찔러댔다. “사랑해”라는 말이 가장 아픈 문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실패한 나의 첫사랑, 안녕.





ChatGPT Image 2025년 8월 6일 오전 08_15_12.png


이전 04화너는 나를 버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