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 붙인 가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꾹 누르는 데에 익숙해졌다. 내가 아프다고 말해도 돌아오는 건 애매한 위로나, ‘힘내’라는 말뿐이었고, 그조차 듣고 나면 더 허무했다. 그러니까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고통을 꺼내는 일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조심스러운 표현이었다.
“요즘 좀 힘들어.”
“그냥, 마음이 좀 그래.”
그렇게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생각보다 가볍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이거나.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말이 너무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예 말하지 않게 되었다. 별일 없냐는 질문에 “별일은 무슨~” 하고 웃어넘겼고, 실은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거나 눈물을 삼키느라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는 목구멍에만 맴돌다 삼켜졌다.
그렇게, ‘괜찮은 척’은 내 언어가 되었고, ‘웃는 척’은 내 표정이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때면 나는 얼굴에 미소를 그려 붙이고 나갔다. 적당히 맞장구치고, 유쾌한 사람인 척했고, 다정한 말도 잊지 않았다. 그게 싫었냐고 묻는다면, 아니, 그건 어쩌면 살기 위한 방식이었다. 어떻게든 관계 안에서 버티기 위해,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가면을 썼다.
그 시절의 나는 심리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뒤늦은 편입이었고, 나는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과제도, 시험도, 발표도 빠짐없이 해냈고 주변 사람들은 날 ‘모범생’이자 ‘사교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외로움이 숨어 있었는지. 그 성실함 안에 얼마나 깊은 무기력이 감춰져 있었는지. 가끔은 나조차도 내가 외로운 줄 몰랐다. 너무 잘 웃고, 너무 잘 살아내니까. 진짜 마음은 나조차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걸 들여다보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억지로 뚫고 올라오는 감정을 때려눕혔다. 의지를 가장해서, 정신력을 들이밀어서, 나를 누르고 또 눌렀다. ‘괜찮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 강박이 나를 움직이게도 했고, 나를 질식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 무렵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 터질 틈도 없이 모든 것을 억누르고 웃는 사람. 그게 나였다.
누군가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내게 이렇게 물어봐 줬다면.
“정말 괜찮아?”
“지금 웃고 있는 거, 진짜야?”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내 가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나를, 내 진짜 마음을 누가 알아채 준 적이 있었던가. 과연, 누가 날 진짜로 본 적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