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망치는 사람이 나야

직면을 해야 한다는 것은,

by 무연


나는 늘 남 탓을 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해서, 누군가가 나를 외면해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망가졌다고 믿었다. 세상이 나를 몰라주고,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가족이 나를 억압하고, 친구가 나를 버리고, 연인이 나를 떠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라고, 그렇게 말해왔다. 그리고 그 말들이 모두 틀린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정말 날 다치게 했고, 어떤 말은 정말 칼처럼 날 찔렀다. 그 감정들은 진짜였고, 그 아픔들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반복하던 나는 언제나 빠져 있었다. 나는 늘 피해자였고, 나는 늘 옳았다. 그러니까, 문제는 밖에 있었다. 나는 단지 견디는 사람일 뿐, 나를 망가뜨린 건 전부 외부의 탓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실에서, 무심한 질문 하나가 나를 무너뜨렸다.


“그런 상황에서, 왜 자해를 선택하셨어요?”

“그 관계가 위태하다는 걸 알면서, 왜 거기서 더 나아가려 했을까요?”

“혹시 그 안에서 당신이 ‘무언가’를 얻고 있었다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너무 조용히, 너무 정확하게 내 중심을 찔렀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내가 피해자라고 말하며 무언가를 조종하고 있었고, 자해로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고, 상처를 이유로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었다는 걸.


그건 아주 무서운 직면이었다.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건 쉬웠다. 그래야 내가 무너지지 않으니까. 그래야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건 나의 정체성이었고, 내가 쌓아올린 자존감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무너졌다. 정말 무너졌다. ‘어쩌면 지금껏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 그 문장을 처음으로 입에 올렸던 날,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믿었던 나, 지켜왔던 나, 그 모든 것이 잘못 세워진 구조물처럼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나는 자해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고, 상처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고, 감정의 폭발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는데 그 모든 행동이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은 살점을 도려내는 고통이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를 보호해주던 모든 방식을 부정해야 한다면, 내가 나를 견디게 해온 모든 수단을 놓아야 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

그 질문 앞에 선 나는 그저 한없이 초라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아이처럼.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시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무너졌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다시 쌓을 수 있다는 가능성. 무너졌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무너질 곳이 없다는 안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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