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폭풍의 위력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쁨과 분노, 슬픔과 짜증, 서운함과 미안함, 그 모든 감정을 극단적으로 오가며 산다. 처음엔 몰랐다. 모두가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다가도 하나의 작은 마찰, 하나의 어긋난 타이밍, 혹은 잘 외워지지 않는 한 줄의 문장 때문에 감정이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건 단순히 ‘짜증난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진짜로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손끝이 떨리고, 온몸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감정의 끝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반대로, 짜증으로 가득 차 있던 날에도 누군가의 한 마디 칭찬, 특히 아빠의 “잘했네”라는 짧은 말에 기분이 거짓말처럼 사르르 풀렸다. 이상하리만치 쉽게, 또 이상하리만치 깊게.
나는 내 감정이 이렇게 들쭉날쭉할 수 있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게 보통은 아니라고도.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감정이 조절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나 자신도 이렇게 감당이 안 되는데, 남의 감정까지 들어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유난히 타인의 감정에 민감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 그 사람들의 감정이 파도처럼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느낌.
카페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앞 테이블에서 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따지듯 컴플레인을 하고 있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 나는 두 사람의 감정을 동시에 받아버렸다. 아르바이트생의 당혹감, 그 손님의 불쾌함, 말끝에 묻어 있는 날카로운 감정들.
그건 나한테 직접 향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내 심장은 두근거렸고, 손바닥엔 식은땀이 맺혔다.
나는 그게,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 중 하나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감정의 경계가 약해서 남의 감정조차 내 감정처럼 느끼는 것. 일명 감정폭풍. 나는 그걸 정말 문자 그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걷다 보면, 누군가의 한숨에 찔리고, 누군가의 눈빛에 젖는다. 그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너무 쉽게 흡수했다. 기억해보면, 친구가 우울할 때면 내 기분도 어김없이 가라앉았고, 애인이 짜증이 나 있을 때면 그 짜증이 내 안에서 증폭됐다. 그러다 보면, 나는 자꾸만 나를 잃었다. 감정의 색이 너무 짙어져 내 본래의 감정이 묻혀버리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온몸이 탈진한 사람처럼 지쳐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점점 사람을 멀리하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게 외롭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너무 아프다. 그들의 감정이 칼처럼 들어와 내 감정을 긁어내고, 나는 울지도 못한 채 그걸 꾹 참고 삼킨다.
어쩌면 나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연습보다 감정을 ‘덜 느끼는’ 연습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도 이미 벅찬데, 왜 세상의 감정까지 내가 짊어지고 살아야 할까. 그런 억울함마저, 감정폭풍에 휩쓸려 또 나를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