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못 잊을 맛
나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쓸 줄도, 마실 줄도, 즐길 줄도 몰랐다. 술자리에 앉아도 탄산을 고집했고, 가끔 맥주 한 두잔 정도. 술의 쓴맛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이걸 왜 마시는 거지? 그게 내 진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술이, 이상하게 달게 느껴졌다. 입안에서 도는 알코올의 열기, 목을 타고 내려가며 퍼지는 묘한 기운, 그 순간만큼은 뭔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기분 좋게 무뎌지는 느낌. 그날 나는 ‘아, 이래서 마시는 거구나.’를 처음으로 이해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쓴맛을 보고 있던 시기였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있던 시기. 감정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던 시기. 그 누구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고, 내 말은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워서 사람들 사이 어디에도 걸치지 못하던 그 시기.
그때 술은, 나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존재였다. 사람이 위로해주지 않을 때 소주 한 병이 나를 안아주었다. 처음엔 소량이었다. 한 병. 그냥 기분이 울적해서. 오늘 하루 너무 애썼으니까, 이 정도쯤은 괜찮잖아? 그러다 두 병. 조금 더 취하고 싶어서. 조금 더 오래 이 상태로 있고 싶어서.
양은 점점 늘어났다. 기분이 나빠서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이라는 걸 느끼고 싶어서 마시는 날도 생겼다. 한 잔이 들어가면 조금 웃게 되었고, 어깨의 힘이 빠졌고, 가슴 한구석이 약간 따뜻해졌다. 그게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술을 찾았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자주.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마다, 혼자라는 기분이 사무칠 때마다.
자해는 위험한 거니까. 하지만 술은, 누구나 마시는 거잖아. 이건 중독이 아니야. 그냥, 잠깐 기대는 거야.
나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안전하게 마시고 있다고, 취하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오히려 이런 식으로라도 감정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거 아니냐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자해랑은 달라.”
자해는 흔적이 남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니까, 위험하다고 말리니까. 그런데 술은,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혼자 마시는 걸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감정을 술로 달랜다고 말해도 다들 “나도 그래”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더 깊어졌다.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무너지는 소리를 무마시켜주는 유일한 방식이었기에.
기억나는 날이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소주 4병을 비운 밤. 그날은 눈물도 안 나고, 말도 안 나오고,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있었는데 머그잔에 쪼르르, 떨어지는 소리만이 내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소리였다.
그렇게 혼자 술을 마시며 나는 처음으로 '아, 나 좀 위험한가 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마셨다. ‘지금 이 잔을 안 비우면, 무너질 것 같다’는 감정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술을 마시고 나면, 무너지는 속도가 잠시 늦춰졌고, 내 안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잠깐 멈췄다. 그 정적이, 필요했다. 누가 울어도 듣지 않고, 누가 떠나도 막지 않고,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
알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음주가 아니고, 감정을 지우기 위한 도구라는 걸.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고요한 방 안, 나는 멀쩡하게 앉아 있었지만, 그때 느낀 내면의 공허함은 그 어떤 자해보다도 더 깊게 나를 찔렀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의 술맛을 떠올린다. 쓴맛 위에 덧입혀진 달콤함. 모든 게 무너져 있던 시기에만 맛볼 수 있었던 그 이상한 위로의 맛.
평생 가지지 못할 맛이자, 잊지 못할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