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터진 감정

닿지 않는 목소리

by 무연


나는 꽤 많은 흉터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봐도 이상하다, 저건 뭘까? 싶을 정도에 흉터다. 내가 새긴 나의 손에서 비롯된, 흉터다. 피부 위에, 그리고 더 깊은 곳에. 그 자국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와의 관계가 어긋난 순간들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랑을 구걸했고, 시험했고, 확인받고자 했다. 그 사람의 말투 하나, 이모티콘 하나, 답장이 늦어진 시간 하나하나를 해석하느라 밤을 지새웠고, 내가 불편한 말을 꺼냈다가 돌아오는 침묵을, 끝끝내 나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관계가 끝났다. 아무 예고 없이, 혹은 지독하게 예고된 방식으로.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내 감정의 폭발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내는 화가, 결국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너무 심했나?’

‘그 사람 기분 상했을까?’

‘혹시 나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래서 나는 참는 것을 선택했다.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 혼자 삭이고, 애써 괜찮은 척하고.


그렇게 쌓인 감정은 그럼에도 나를 향해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은 실망스러울 때 욕을 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신다. 그런데 내 뇌는, 항상 자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를 꺼내 들었다. 그 선택은 한 번도 갑자기 등장한 적이 없다. 매번, 너무도 논리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지금은 이것밖에 없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마다 머릿속은 아주 정교하게 계산했고, 감정은 그 계산을 충실히 따랐다.


자해를 하면 속이 시원했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울컥거림, 억눌림, 오열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이든 깨부수고 싶은 충동이 찾아올 때, 내가 부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나 자신뿐이었다.


그 순간의 나는 조용했다. 정말이지, 너무 조용했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휴대폰도 멀리 던져놓고, 모든 소리를 끄고 나서야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누가 보면 감정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나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이 감정이 너무 시끄러웠다. 생각이 폭발하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차고, 손이 떨리고, 눈물도 멈추지 않았다.


그 시끄러움 속에서 내가 꺼낸 건 칼이 아니라, 정적이었다.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마음은 잠시 멈추었다. 누구에게도 소리치지 못했기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했기에, 자해는 내가 스스로 감정을 뚫고 나가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 안엔 죄책감도 있었다. 수치심도, 자기혐오도, 누가 보면 이해할 수 없을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아는데도, 나는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그것 말고는 나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어떤 관계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상대는 떠났는데, 나는 여전히 붙잡고 있었고, 상대는 아무렇지 않은데, 나는 그 잔해를 껴안고 있었고, 나는 그 잔해를 끌어안은 채, 또 다시 나를 찔렀다. 그러니까, 내 몸에 남은 자국들은 단순히 고통의 기록이 아니다. 그건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나의 흔적이다. 붙잡고 싶었고, 붙잡히고 싶었고, 끝내 그게 무너졌을 때,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한 아이의 절규다.


그리고 그 절규는, 소리 없이 터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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