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해주지 않아도 돼, 그냥 떠나지만 말아줘

터트리지 못한 아이의 울음

by 무연


나는 사랑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얻어내야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나는 잘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잡은 건, 놓치지 않아야 했다. 사람들이 쉽게 관계를 맺고,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상처받고 흘려보내는 걸 보면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나 싶었다. 내겐 언제나 그게, 붙잡고 있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 나는 바이올린을 했다. 정확히는, 시켰고, 그래서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처음엔 괜찮았던 감정으로 다가왔던 바이올린을 나는 끔찍하게 싫어했다. 연습실의 냄새, 활이 줄을 긁는 소리, 턱에 눌린 멍, 손가락 끝의 굳은살, 모든 게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엄마가 너무 기뻐했기 때문이다.


“너는 뭐든 잘하는구나.”

“우리 딸, 진짜 천재인가 봐.”


그 말들 뒤에 숨어 있는 진심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너는 잘해야 사랑받는다.’

‘그만두면, 너는 아무것도 아닌 아이가 될 거야.’

‘네가 바이올린을 그만두는 날, 나는 너에게 실망할 거야.’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엄마가 실망하면, 그게 곧 나를 놓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싫어도 했고, 울면서도 연습했다.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13년을 버텼다. 누군가는 그걸 ‘재능’이라 하고 ‘열정’이라 착각했지만 나에겐 철창이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줄 위에 나는 매일 나를 눕혔다. 바이올린 케이스는 내 감옥이었고, 나는 그 안에 들어가야만 엄마의 사랑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사춘기 즈음엔 더 격렬히 미워졌다. 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너무 오래 삼켜왔고,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엄마의 눈빛이 변할까 봐, 사랑의 줄이 끊어질까 봐,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어릴 때의 그 감옥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나를 따라왔다. 누군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주면 그 순간이 너무 기뻐서 나는 모든 감정과 에너지를 거기에 쏟았다. 대신, 아주 사소한 외면에도 나는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그 사람이 바빠서 잠깐 연락이 뜸해진 것일 수도 있는데, 그냥 피곤해서 대답이 짧아진 것일 수도 있는데, 내 머릿속엔 늘


“아, 나를 싫어하게 된 거구나.”

“이젠 나 필요 없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면 나는 더 열심히 애를 썼다. 눈치를 봤고, 잘하려고 했다. 그러다 점점 지쳐가면서도 놓을 수 없었다. 놓는 순간, 사랑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아서.


이해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절박했던 건, 그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는 것. 그래서 어떤 관계든 나는 종종 어른이 아닌 버려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이가 되었다.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내 곁을 떠나는 걸 나는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럴 땐 스스로 너무 창피해졌다. 이 나이 먹고, 이 정도 겪었으면, 이젠 좀 괜찮아질 법도 한데 왜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움츠러드는 걸까. 감정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건 내가 바이올린을 들고 연습실 문 앞에 서 있던 그 어린 날의 나였다.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울음을 제대로 터뜨린 적이 없었다. 소리 내어 말한 적도 없었다. 그저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악기에 껴맞추었고, 결국 그 악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그 철창 안과 밖을 왔다 갔다 하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은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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