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본 '나', 다시 시작하는 '나'

퇴사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 (1) 바닥을 마주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

by 단짠노마드

사직서를 낼 때만 해도,

이런 무너짐이 올 줄은 몰랐다.


사직서를 내기까지, 나는 꼬박 1년을 고민했다. 창업 관련 책을 읽으면서, 이미 마음만큼은 사장이 되어 있었다. 여느 직장인과 나는 다르다는 착각이 나를 조용히 휘감고 있었다.

mohamed-nohassi-odxB5oIG_iA-unsplash.jpg 이미지 출처 : Unplash

실제 사직서를 제출했을 즈음, 정부 창업지원사업인 예비창업패키지 서류 합격 소식을 받았다.

발표평가를 앞두고 있었고, 사업계획서도 수차례 전문가 자문을 받아 다듬어 놓은 상태였다. 모의 PT까지 마친 후였으니까 ‘이건 된다’고 믿는 게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2025년 예비창업패키지 서류평가 결과 메일]


하지만 그 믿음은 내게 독이 되었다.


퇴사 전부터 이미 나는 지원사업 합격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사직서와 함께 현실도 내려놓아 버렸다. 받지도 않은 지원금을 어떻게 쓸지, 사람을 어떻게 뽑을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회사를 이미 머릿속에서 키우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현실을 잘 모르는 초이상주의자였다.


내가 준비한 사업은 안전장비 제조업. 관련 경험도 없었고, 내가 가진 건 특허와 몇몇 협업 네트워크뿐이었다.

기술, 금형, 제작, 시험인증.

무엇 하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두 외부 전문가와 함께해야 했고, 시험인증은 수천만 원을 들여도 한 번에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내게는 돈보다 지원사업이 더 절실했던 이유다.


그런데 결국, 합격자 명단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그 뒤로 지원사업은 계속 떨어졌다. 줄줄이 탈락. 한 번도 붙지 않았다. 이미 퇴사는 했고, 더는 내가 다녔던 회사로 나를 소개할 수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이름 석 자뿐이었다.


‘나를 뭘로 소개할 수 있을까’
‘내가 대표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가 잘하는 건 도대체 뭘까’


퇴사 전에 했어야 할 질문들을

퇴사 후에야 묻고 있었다.


그 무렵, 토스 이승건 대표가 유튜브에서 했던 말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그 말이 나를 무너뜨렸다.

잘 될 이유를 수백 개 만들어서 이야기하고, 나까지 그 이야기에 속아 스스로 굳게 믿어버렸다.
잘 될 거라고 센 척하는 것이 강한 줄 알았지만, 그건 오히려 약한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준비한 사업이 잘 될 거라고 너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어쩌면 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도 떠났고, 정부지원사업도 모두 떨어지고 나니 나를 포장해 주던 겹들이 하나씩 벗겨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나만 남았다.


새벽같이 일어나던 루틴은 사라졌고, 아침부터 SNS에 매달려 남들의 성공을 끝없이 비교했다. 그럴수록 나는 작아졌다.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던 날들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것 말고도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그런데 그 말들이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한 곳으로 나를 끌어내렸다.


그러다 문득, 1년 전 지인이 소개해줬던 ‘신점’ 생각이 났다. 고민할 틈도 없이 예약했고,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그 의심으로 마음이 가득했을 때 그분이 조용히 말했다.

“그동안 사업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니.
네가 애쓴 거, 다 안다.”

그 말 한마디에 처음 본 사람 앞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이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안에 쌓였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다.


그때 알았다.
바닥을 친 것 같은 순간에는 “앞으로 잘 될 거야”보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가 사람을 더 살린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천천히 다시 일어설 에너지를 찾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