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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을 준비 중입니다.

‘잘‘ 이 아닌 ’단정스럽게’ 를 고민 중입니다.

by 단 정




6월과 7월은 단정의 리모델링 기간으로 문을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원래 단정의 공간은 매주 월화수는 작업과 택배 보내는 날로 쓰고, 목금토는 정해진 영업시간에 문을 열어 놓습니다. 대구 지역에 계시는 손님들은 주문한 물건들을 픽업하러 직접 오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상점에서 제품들이 판매되는 것이 대부분의 일이라 매장의 영업시간은 조용한 날이 더 많습니다. 올해는 이 시간을 좀 더 단정스럽게 메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변화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잘 운영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늘 있었지만 이를 결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손님을 직접 대하는 것은 온라인 운영과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더 어려웠달까요. 단정을 운영한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는데 한몫했습니다.


두 달이나 쉬어가는 리모델링이라고 하니 대단한 것을 생각하실까 봐 겁이 납니다. 막연히 찻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내뱉기가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던 차, 이웃의 하고 서점 사장님께서 추천해 준 사업일기 속의 ‘업의 본질’에 대해 써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잘 써낼 수 있겠지 했던 항목들은 뒤통수를 맵게 후려칩니다. 단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대부분 모른척 스리슬쩍 넘어간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단정의 세계관을 써 내려가면서 느낀 지점입니다. 와서 편안하게 먹고 쉬고 가면 좋겠다는 말을 늘 내뱉고 다니면서 단정의 공간을 너무 특별하고 완벽한 것들로만 채우려 한 것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이 생겨난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편안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그에 대한 메모입니다.



편안함이란 무엇일까요? 내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털어놓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안함일까요?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편안하다는 것은 ‘잘 짜여진 바구니 안에 놓인 계란인 것 같습니다.‘ 잘 짜여졌다는 것은 배려가 있다는 것이고, 깨지기 쉽다는 점에서 계란은 곧 ‘기분’입니다.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바구니 안에서도 서로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각자가 지니고 있는 선을 존중하고 존중 받아야 합니다. 법석을 떨며 이러쿵저러쿵 남의 일을 논하거나 고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처음 만난 자리라 해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섞입니다. 마치 원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요.


뾰족한 기분으로는 아무래도 같은 바구니 안에서 편안할 수 없겠지요. 각자가 지닌 뾰족함을 단정에 오셔는 잠시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단정이 그를 돕는 역할로 쓰이면 좋겠습니다. 오셔서 내려놓고 쉬다 가세요. 그렇다면 음식의 맛있음은 물론이고 사람사이의 다정함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편안함을 느끼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단정의 세계관을 공책에 삐뚤빼뚤 써 내려가고서야 고민의 지점이 ‘ 잘하고 싶다.‘ 에서 ‘단정스럽게 하자.‘ 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무슨 메뉴를 낼지, 어떻게 멋있게 보여줄까에 대한 고민은 사실 그 다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늘 느끼지만 일하는 시간보다 일하지 않고 있는 시간이 더 힘듭니다. 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하면 그것은 오롯이 머리와 마음에 가 쌓입니다. 그로 인해 깊어지는 고민들은 더 많이 밤잠을 설치게 하지요.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민을 얼른 마치고, 새로운 단정의 얼굴로 나타날게요.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을거예요.’ 라고 쓴 인스타그램의 공지를 오늘은 좀 고치고 싶습니다.

‘충분히 고민한 후에, ‘잘’ 이 아니라 ‘단정스럽게’ 에 한 발 더 다가간 모습으로 찾아오겠습니다. ’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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