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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열시간

예열은 오븐만 하는 게 아니라,

by 단 정




아침에 가게 문을 열면 전날 작업한 재료의 냄새가 콧속 가득 훅 밀려 들어옵니다. 전날 생강청을 달였으면 생강의 냄새가, 홍차시럽을 만든 날이면 얼그레이 찻잎의 향기가, 금귤 콩피를 만들었던 날은 달콤한 귤향이 공기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어제는 새로운 레시피를 테스트하느라 과자를 구웠는데 고소한 버터냄새가 가게를 온통 메우고 있었습니다.


현관 안에 떨어진 전단지들을 줍고, 간판을 꺼내서 가게 앞에 세워두고, 겉옷과 걸어놓은 앞치마를 바꿔 입습니다. 물을 끓이고 차를 한주전자 가득 우려 놓습니다. 그것을 홀짝거리면서 해야 할 일을 체크하고 앞뒤로 중요한 일을 빠뜨리고 있지 않은지 일정을 살핍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주방에 들어가면 늘 실수를 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방에서는 정신이 쏙 빠져 있어 전화벨 소리도 잘 못 듣고, 할 일을 까먹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머릿속 생각보다 몸이 해야 하는 일에 온 에너지가 쏠려 있기 때문일까요.


계절에 따라 재료와 일의 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여전히 주방에서 늘 헤맵니다.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가게의 일이란 것이 하나를 해결하면 또다른 하나의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가오니까요. 그 숙제들은 아무리 또 풀고 풀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투성입니다. 그 일 중에 하나가 과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단정의 제품들 대부분이 마실거리라, 함께 먹을거리를 만들어 가는 일도 중요하다 여겨져 시작했습니다. 단정의 과자들은 국산 쌀가루와 밀가루를 기본으로 과자마다 그 특징을 잘 살려 굽습니다. 재료의 향과 맛, 가루의 수분율과 입자, 그에 어울리는 버터를 결정하는 일, 계란을 넣고 구울지 빼고 구울지에 대한 고민, 어떤 설탕을 넣을지, 모양과 두께, 몇 도 씨 몇 분을 구을지, 등을 고민해서 레시피를 짜고 있습니다. 생각할 게 많아 어렵겠다 하지만 다행히 이 고민을 즐기는 편입니다. 구현하고 싶은 맛이 한 번에 완성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나 테스트가 실패하더라도 어느 지점에서 수정하면 되겠다는 감각이 생깁니다. 이 과정을 충분히 해야, 완성품을 만드는 일에 실수나 오차가 적어집니다.


과자를 굽기 위해 오븐을 쓰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예열입니다. 0 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과자를 굽기 위해 정해놓은 적정온도까지 미리 덥혀놓는 과정이지요. 모든 요리는 만듦새에 따라 각자의 적정 온도가 필요합니다. 수제청이나 시럽은 차가운 온도에서 천천히 숙성되면서 그 맛이 완성되어 간다면 과자와 빵 같은 구워 먹는 음식들은 익기 위한 가열점이 필요합니다. 준비된 온도에서 시작되어야 실패할 확률 없이 안정적으로 과자가 구워지는 겁니다. 이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계획했던 과자의 식감이나 색과 모양이 기대와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지난 5월의 과자는 선물을 위해 많이 찾으시기 때문에 받으시는 분의 연령대를 생각해서 조금 더 어른스러운 맛으로 상자를 채웠습니다. 메밀가루와 현미가루를 이용해 구수한 맛을 내는 쿠키, 쑥맛이 더 진하게 나는 쿠키, 딜과 레몬이 콕콕 박혀 상큼한 맛의 쿠키, 저번상자에서 인기가 좋았던 진저쿠키. 등이었습니다.


오븐에 과자를 넣고 나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붉게 달아오르는 열 속에서 천천히 과자 반죽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예열은 오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저에게도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요. 과자도 저도 예열을 충분히 거쳤는지는 잠시 후 결과물이 나오면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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