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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지고 나섭니다만, 결국은.

마켓에 대하여

by 단 정




단정이 별다른 홍보나 마케팅 없이 손님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 중에 하나는 바로 마켓입니다. 첫 마켓에 나갔던 시점은 단정의 가게를 시작한 해, 2017년 여름이었습니다. 5월에 가게를 열었을 때 오픈빨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나름 장사가 잘되어서 이렇게만 유지된다면야 어려울 것이 하나 없겠다고 철없이 좋아했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장사가 그리 쉬울 리 있겠습니까. 그다음 달인 6월부터 가게는 조용한 날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입이 방정이었습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만나게 된 것이 바로 ‘마켓‘입니다. 처음으로 단정의 제품들을 냉장박스에 쟁여 이고지고 나섰던 게 생각납니다. 대구 시지의 어느 갤러리에서 열렸던 마켓인데 그때 함께 했던 사장님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인연이 된 몇몇 분들은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단정의 제품들은 모두 액체 혹은 원물이 유리병에 담겨 있는 형태라 상자에 넣고 나면 여간 무거운 게 아닙니다. 여자 둘이서 무슨 힘으로 그런 상자들을 번쩍번쩍 들었다 놨다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는 웃음이 납니다. 후에 남편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무거운 상자도 자루도, 번쩍번쩍 들어다 주니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1200 x 600mm의 간이 테이블에 단정의 제품들을 가지런히 전시해 두고, 시식해 볼 수 있게 코너도 만듭니다. 드셔보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요.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제가 정말 이상했을 것입니다. 계산도 서툴러서 손님을 줄 세워놓고, 죄송합니다라는 소리를 달면서 첫 번째 마켓을 마쳤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처음 단정의 마켓 매출이 지금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둘이서도 들기 힘든 상자를 돌아갈 때는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빈 상자로 만들어 갔으니 꽤나 선전한 셈입니다.


단정의 처음 마켓 현장입니다. 2017년도네요.

마켓으로 인해 손님들이 단정의 가게로 오시는 일도 빈번해졌습니다. 온라인 상점에서 재주문이 들어오는 일도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큰 마켓에 참여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당시의 큰 마켓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여는 형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판매를 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부산, 전주, 광주, 대전, 서울 등등.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들을 단정 덕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건이 하루 만에 동이 나서 다시 대구로 와서 만들어 갔던 날도 있는가 하면, 들고 갔던 것을 고대로 다시 들고 돌아왔던 날도 있었습니다. 분명히 오전에는 쨍쨍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어, 난감했던 날도 있었지요. 물론 비에 쫄딱 젖는 것은 저였지, 단정의 제품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마켓을 마치고 돌아오면 몸속 구석구석 숨어있던 에너지까지 다 꺼내어 썼다는 것을 증명하듯 며칠을 골골합니다.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지요. 짧은 며칠 안에 수많은 손님들에게 단정의 제품을 안겨서 보내는 일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제작년 큰 마켓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너무 지친 저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 이렇게 얼마나 더 오래 할 수 있을까?”

“ 글쎄. 잘 생각해봐야 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이고 지고 나서는 일이 진짜 도움이 되는가를. 겉으로 보면 남을 수는 있지만 안으로는 별로 남는 게 없는 일일 수 있어. “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덤덤한 어투였지만, 날카롭게 제 머릿속을 후벼 팠습니다. 여기저기 나서기 바빴던 단정의 일은 멈출 줄 모르고 겉으로 뻗어나가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해에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큰 마켓을 과감히 정리하고, 내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단, 행사를 나가게 된다면 철저하게 단정의 메시지와 어울리는 곳으로 가되 거리적으로 너무 먼 곳을 택해 큰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이고 지고 나서는 에너지를 크게 써야 한다면 그것은 서울이어야 한다고도 나름 큰 도전의 가능성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었습니다.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던 것들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만, 돌아보면 그 일은 단정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손님들에 제품들을 안겨주는 일이 단기간의 매출을 만들 순 있었지만, ‘먹고사는 일 단정하게 합니다.’ 라고 만들어 놓은 단정의 메시지와는 멀어지는 일들의 연속이었으니까요. 본래 자리에서 단단히 뿌리내리고 버티는 시간을 지나지 않으면 당시의 작은 불안들이 다음에는 더 큰 불안이 될 것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한달동안 단정은 ‘색동장’ 과 ‘채소와 열매장’ 이라는 대구의 지역 마켓에 참가했습니디. 토요식탁이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장이지만, 마켓이 열릴때마다 늘 주제가 있기 때문에 정식 제품들 외에 주제와 맞는 제품들을 연구해서 들고 가야 하는 숙제가 있는 곳입니다. 한정되어 있는 작은 테이블 안에서 숙제를 해결하려면, 과감하게 제외하거나 놓아야 하는 부분도 생깁니다. 그 과정에서 단정을 찾는 손님들에게 무엇을, 제대로, 잘, 전달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숙제를 해내면서 단정도 성장하지만 마켓도 함께 성장합니다. 단순히 판매만을 위한 장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기획자의 메시지는 안일함이 생기려 할때 번쩍 정신이 들게 합니다. 참여하는 곳과 지향하는 목표가 100퍼센트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교집합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느낀 부분입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상생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손님들을 만나고 싶어서 이고 지고 나섭니다만, 결국은 단정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가서 많이 벌어와야지에 집중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단정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궁금해하는 손님들을 만나는 일에 더 비중을 둡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다시 단정으로 돌아왔을 때로 초점이 맞춰집니다. 바깥에서 잔뜩 씨앗을 뿌리고 왔어도, 그 씨앗들이 다시 돌아올 이곳의 모습이 어떤지를 더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시작한 곳에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고 지고 전국 방방 곡곡을 헤매이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는… 그래서 행복하게 앞으로도 먹고 사는 일를 잘해보겠다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남겨봅니다.




P.S : 숙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어 5월동안 연재가 뜸했습니다. 라는 변명같은 고백을 덧붙입니다. 연재가 없던 동안에도 단정의 이야기를 좋아요 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채워볼게요. ^^



인스타그램 : @_da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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