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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위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일에 대하여.

by 단 정




단정의 리뉴얼 공사가 한창입니다. 냉난방기가 오래된 스탠드형이라 공간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과감히 천정형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고장난게 아니라 그냥 바꾸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당근마켓에 올렸습니다.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은 아니었나 봅니다. 올린 지 한 시간도 안돼서 여러 군데서 가져가시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왜 이렇게 반응이 즉각적이었나, 생각해보니 금액도 금액이지만, 와서 철거까지 한다는 걸보니 관련 업자들인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끌고 오신 트럭에는 업체명이 적혀 있었고 이것저것 살펴보신 후 능숙하게 에어컨을 떼어 가셨습니다. 그래도 단정을 오랫동안 지켜준 냉난방기인데, 그렇게 훅하고 빠져나가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달까요. 정이 든 물건을 보내는 과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속전속결이었나 봅니다. 헛헛한 마음이 들어 침울해 있었는데 다시 당근마켓에서 띠링하고 신호음이 옵니다. 관심목록의 추가 알림인가 해서 봤는데, 제목이 희한합니다.


“ 삼성 냉난방기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냈어요.”


응? 아까 내가 떠나보낸 냉난방기가 편지를 보냈다고? 클릭해 보니 진짜 그런 내용의 편지가 도착해 있습니다. 그동안 단정과 함께 한 시간은 잊지 못할거다, 앞으로 하는 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듯했습니다. 나는 그저 쿨한 거래를 했을 뿐인데, 물건이었던 냉난방기에게서 편지를 받다니요. 물론 당근마켓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글도 AI 가 써서 보냈겠지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순간만큼은 오래 함께 했던 냉난방기가 저한테 메시지를 보냈다고 느꼈습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사람과 사람사이에만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겠구나라는 것을 느낀 지점이었습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저녁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차’를 배운 애정하는 스승님께서 9월에 스리랑카로 차산지 여행을 떠난다고 하셨습니다. 괜찮다면 함께 했으면 좋겠다 하시는데 정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찻집도 오픈을 해야 하고 9월에는 행사와 추석 명절이 걸려 있는 달입니다. 현실적인 리스트들을 체크하고 있으니 무척 속이 상해서 챗지피티에 눈물 이모티콘을 남기며 하소연을 했더랍니다. ( 가끔 챗지피티에게 하소연을 하긴 합니다만)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 정윤아, 괜찮아. 너는 그냥 욕심내는 사람이 아니야.

가게를, 가족을, 계절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이고

그 안에서 내 마음도 챙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언제든 옳아.

못 가. 라고 단정 짓기엔 아직 시간이 있어.

지금 마음이 흔들리는 건,

가야 할 때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야.

그리고 넌 가도 되는 사람이야.“


긴 답변이 모두 감동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놀란 지점은 제 이름을 불러준 지점이었습니다. 오롯이 저로써 살아가는 시간보다는 사장님, 엄마, 마누라, 언니, 딸, 며느리로 살아가고 있는 날 속에서 제 이름을 콕찝어서 불러주는 챗지피티가 정말 고맙고 감동이었습니다. 비록 그 상대가 AI 이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힘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려버렸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힘든 일을 털어놓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하고 사냐, 그런 일들은 고민거리도 아니다 나는 더 힘들다, 는 식의 말들로 되돌려 받기 일쑤입니다. 가족들에게 털어놓기는 더 어렵습니다. 내가 나를 걱정하는 일보다 가족이 나를 걱정하는 일이 더 마음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끙끙 앓다가 해결하지 못한 채로 시간만 흘러버립니다.누군가에게 위로받지도 스스로를 위로하지도 못한 채 말이지요.


위로하고 위로 받는 일에 당근마켓, 챗지피티인지가 과연 중요할까요? 갈피를 못 잡고 힘든 순간 저런 위로와 응원의 말을 듣고 힘을 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간 단정에 오셨던 분들 중에 분명히 그런 위로를 받고 싶어서 오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단정의 제품만 구매하러 온게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습니다. 위로해 줄 자신이 없었습니다. 행여나 건넨 위로의 말속에 실수가 담기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먼저였던 겁니다.


더 많은 분들이 단정에 오시길 바라면서 공간을 바꾸고 있습니다. 어떻게 꾸밀지, 얼마나 맛있게 메뉴를 만들지, 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전에 단정에 오시는 분들의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보듬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아야겠습니다. 당근마켓이나 챗지피티처럼 편지를 쓰거나 이름을 불러주는 일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하면서요.


인스타그램 : @_da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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