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붉은 벽돌이 싫었을까?
단정이 있는 이곳은 대구 남구의 전형적인 주택과 빌라촌이며 골목 사이사이에서 꽤 오래된 양옥집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단정의 공간도 오래된 양옥집이며 그중에서도 외장의 대부분이 오래된 적벽돌로 마감이 되어 있습니다. 찻집 공사 예산의 1순위로 매겨진 것은 이 적벽돌을 감추는 외장 리모델링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덮고 있는 적벽돌이 너무 싫습니다. 게다가 이 벽돌은 단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홀의 한쪽 벽면에도 모두 발라져 있어서 단정의 안과 밖을 모두 잠식하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곳은 예전에 시부모님이 사시던 공간이었습니다. 수선할 수 있었지만 되려 그 벽돌을 좋아하셨고 그 이유로 지금 홀의 벽을 같은 외장벽돌로 꾸미기까지 하셨습니디. ‘지금 시절의 옛 벽돌이라니 운치 있고 좋지 않아? 빈티지스럽잖아.’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만, 그 말은 전혀 저를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저도 벽돌을 좋아합니다. 단 그것은 진짜 벽돌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흙이 곧 색이 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사면체. 그것들이 일정하게 쌓였을 때 나타나는 조적의 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압니다. 하지만 단정의 안팍을 차지하고 있는 벽돌은 진짜 벽돌이 아닙니다. 붉은색을 겉면에만 입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패턴이 새겨져 있는, 벽돌이 아닌 벽돌 타일입니다. 그야말로 조악합니다. 진짜를 흉내내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제 마음은 손쓸 수 없이 무기력해집니다. 누군가 인생을 통틀어 이런 벽돌타일을 선택할 일이 있겠냐고 물어온다면 대답은 정확하게 No 인데도 저는 왜 이것을 내버려 두었던 걸까요.
두 번째 가게 계약이 끝나고 가게를 허겁지겁 옮기면서 이전의 잔재를 최대한 걷어내지 못하고 그까짓 것 괜찮다며 넘어간 일부터 모든 발단은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단정의 가게를 만드는 일입니다. 좀 더 욕심을 내고 까탈스럽게 굴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니 그래야 마땅한 일인데, 잔뜩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는 그때의 제가 마치 그 가짜 벽돌타일 같았다고나 할까요. 결국 해내지 못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힘듦의 순간들이 벽돌의 칸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가짜 벽돌을 볼 때마다 느껴졌던 무기력함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모델링을 결심했을 때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붉은 가짜 벽돌 타일만은 무조건 없애버리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것입니다.
벽돌의 사이사이로 회색의 시멘트 반죽이 메워지고, 언제 그 벽돌이 붙어 있었냐는 듯 매끈해집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 흰색으로 칠해질 겁니다. 미대를 준비하면서 구성화를 그릴 때, 잘못 그린 부분을 수정하는 방법이 마침 생각났습니다. 수정할 부분을 흰색 물감으로 덮은 다음 다시 원하는 색으로 올려 칠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을 수선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더운 날 아저씨들의 노고는 물론이고 큰돈을 지출해야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그저 가게를 예쁘게만 하는 일이 아니라, 이제야 말로 진짜 출발선에 서기 위해 꼭 해내야 했던 미루고 미루던 저만의 숙제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나오는 길에 흰색이 되어가는 단정의 모습을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마침 언젠가 공책 한 귀퉁이에 썼던 흰색에 대한 메모가 떠올랐습니다.
“흰색은 지우는 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드러나게 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렇게 목구멍에 박힌 가시 같았던 가짜 벽돌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냈으니, 이제 다시 색을 올려보렵니다. 그 색이 어떤 색이든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시원하게 물감을 짤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