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말에서 7월초에는 매실청을 담급니다. 제작년부터 단정의 손님들과 함께 매실청을 담그고 새참도 먹는 클래스를 진행했지만 올해는 리모델링 기간과 겹쳐서 단정의 작업만 하고 있습니다.
단정의 매실청은 일반적으로 집에서 담그는 청과 다른 방식으로 만듭니다. 열매채로 설탕을 켜켜히 쌓아서 만드는 매실청은 설탕이 녹기전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매실의 씨앗에 있는 아미그달린이라는 독성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단정의 매실청은 씨앗을 모두 제거하고 과육만으로 매실청을 담그기 때문에 (원당이 녹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단 며칠만에 청이 완성이 되고, 매실의 과육도 모두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딱딱한 청매실 보다 부드러운 질감의 잘익은 황매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육에 칼집을 내어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눌러주면 씨앗이 빠져나오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수월합니다. 청매실에서 나는 향이 풋풋함이라면 황매실에서는 잘 익은 자두와 복숭아의 향이 나서 드셨을 때 느껴지는 풍미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2018년도부터 거래를 한 매실 농부님과는 일년에 한번 매실이 날때만 연락을 주고 받지만 참 정답습니다. 서로에 대한 안부와 감사의 메세지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메세지 창이 길어집니다. 그런데 올해는 보통 6월 중순 쯤 들리는 소식이 왠일인지 늦어져서 연락을 드리니 기후변화가 작년대비 심해서 황매실 수확이 늦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단정을 운영하던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농부님을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는데는 단정의 일만한게 없었습니다. 모든 재료들이 하늘과 땅이 하는 일인데 얼마나 철없었는지요. 매년 단정의 매실청을 찾는 손님들의 연락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라고 하면 이제는 왠만큼 사정을 이해합니다. 열매를 맺는 일, 농부가 하는 일에 대해 저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함께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매실을 담그는 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단정의 매실청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아니 단정의 모든 제품들이 그렇습니다. 계절에 나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양만큼만 만들고, 그 양이 소진되고 나면 우리는 함께 다음 계절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매년 기후와 시절, 농부의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재료의 맛을 쉽게 정량화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시피라는 것은 평균값을 만드는 것이지, 정확도를 만드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단정에서는 말이죠. 그런 과정에서 재료들을 더하고 빼는 유연한 감각을 익히게 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실 상자가 단정의 문앞에 도착했습니다.뚜껑을 열면 화사한 매실의 향기가 기다렸다는 듯 빠져나와 온 공간을 물들입니다. 이미 숙과가 되어 노랗고 붉은 아이들도 있지만 아직 푸르스름한 아이들도 섞여 있습니다. 한알 한알 매실을 살피며 숙과를 먼저 골라내서 먼저 작업할 매실과 좀 뒤에 작업할 매실들을 나눕니다. 숙과가 많은 상자는 물러서 터진 매실들이 있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것들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농부님께 전화를 해서 불평을 늘어 놓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곳까지 오는동안 너희의 여정이 고단했구나 하며 더 어루만져 보게 됩니다. 그런 아이들은 골라내서 따로 식초를 만들거나 담금주를 만들면 그 또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매년 매실청이 만들어지듯, 그렇게 저도 잘 숙성이 되고 있나봅니다. 오는동안 너무 익어 터져버린 매실에 불평하지 않고 더 보듬아주면 된다는 마음 씀씀이를 이 일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올해의 매실청도 훌륭하게 맛이 들었습니다. 다들 단정의 매실청을 꼭 한번 드셔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