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우지수茶友智水

함께 차를 마시는 친구들.

by 단 정




찻집에서 낼 차를 결정하느라 여러 가지 차들을 맛보는 날이었습니다. 유낭과 둘이서 할 예정이었는데 마침 대구에 내려온 ‘운영‘ 이 함께 해주어 더 반가웠습니다.그녀는 차공부를 하면서 만나게 된, 차친구, 다우 (茶友)입니다. 그녀는 올해 29살로 근래 만난 인연 중에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예 수업에서 만났습니다. 다예 수업에서는 차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어울리는 다기의 사용법을 배웁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운영과 편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수업이 거의 막바지로 갈 때쯤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없는 MZ 세대라니, 뭔가 어렵기도 하고 괜히 실수해서 꼰대 소리를 들을까 싶어 조심스러웠지요. 하지만 ‘차(茶)‘라는 공통분모 때문이었을까요. 부쩍 친해진 후의 우리의 대화는 나이 불문하고 격이 없었습니다.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자리에 없는 다우도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들을 하나의 수업으로 엮어준 다예 선생님 ‘길‘ 입니다. 성씨가 길이어서 길 선생님입니다. 역시 저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중국에서 생활하며 다예사 과정을 거친 그녀는 한국에 들어와 차와 관련된 일을 찾다가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어떤 차가 있는지까지는 공부했지만 이 차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도무지 어려웠던 때에 만난 그녀 덕분에 더 가까이 차의 곁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원해서 배울 때 얻는 깨달음이 얼마나 달콤한지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지요. 마지막 수업이 너무 아쉬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서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선생님과 제자에서, 언니와 동생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던 건 그녀가 먼저 본인의 차바구니와 인생 이야기를 아낌없이 털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둘째를 출산하면서 아들 둘 맘이 되어 육아와 일로 현재 눈코 뜰새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10가지가 넘는 한국차들을 맛보았습니다. 우리에게 호는 있어도, 불호는 없습니다. 단맛이 있으면 쓴맛이 있고, 풀향이 낫다가 꽃향이 나기도 합니다. 부드럽다거나 치고 들어온다는 표현도 써봅니다. 그런 말들의 가운데 단정과 어울리는 것을 찾아 저장해 둡니다. 그렇게 담아놓았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어차피 재료의 맛과 느낌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흩어지고 말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을 잘 기억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때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나침반으로 삼으면 그것만으로도 이 맛보기의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렇게 차를 나누고 맛과 향을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이야기도 터 놓게 됩니다. 테이블 위에 남겨진 수많은 잔과 찻잎들만큼 말이지요.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생긴 좋은 일 중에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코 좋은 스승님과 친구들을 만난 일입니다. 차를 혼자 마시는 일도 물론 좋지만, 함께 마시고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함께 시절을 나는 다우는 참 소중합니다.


다우, 차다(茶) 자에 벗우(友) 자를 쓰는 게 맞는지 확인해보려 하니 애꿎은 ‘다우지수‘ 만 계속 뜹니다. 증권의 증자도 모르는 제 인생, 과연 증시의 다우지수가 궁금할까요? 그보다는 지금 제 곁에 있는 다우들, 혹은 앞으로 만나게 될, 다우들의 안부가 훨씬 더 궁금합니다.


다예수업의 다우들과 단정에서 종강파티를 했었습니다.


keyword
이전 17화십일 다시 십이, 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