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맛집.

차(tea) 말고?

by 단 정




“ 단정은 언제 볕이 잘 드나요?


라는 DM을 가끔 받습니다. 찻집에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가 차 마시는 일 외에 남기고 싶은 것이 있나보다 합니다. 잘 살펴보니 안쪽 방은 11시에서 12시 사이, 홀 쪽은 1시-2시쯤 해가 머물다 갑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해가 잘 들 때는 조명을 켜지 않습니다. 지난번 어떤 손님도 직접 조명을 끄고 볕을 즐기다 가셨던 게 불현듯 기억납니다.


2017년부터 단정을 운영하며 가게를 두 번 옮기고 올해 찻집을 만드는 동안, 제 미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유행하는 것들을 쫓아다니던 시절도 물론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공간을 채우는데 급급하기보다 어울리는 것들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비워둔 자리마다 햇살이 드리우는 아름다움을 만나면서부터였나 봅니다. 그래서 단정의 가구들과 소품들은 빛과 잘 어울리는 것들로 선택합니다. 가구들은 대부분 밝은 베이지 느낌의 레드오크 원목입니다. 한꺼번에 모두 만든 것이 아니라, 작업대, 서랍장, 테이블, 의자 등을 오랫동안 시간차를 두면서 하나씩 채워 왔습니다.

빛이 가장 잘드는 오전의 단정의 방

찻집을 연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전통찻집인가요?

혹은

“보이차요?”


그 질문들 속에는 묘하게 닮은 어떤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오래되고 어두침침한 공간, 차를 좀 안다는 사람들만의 전유물, 많은 규칙과 예절을 감당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반대로 어떤 분은 머그컵에 티백하나 넣어서 주는 게 차라며 값이 아깝다 하였습니다. 그렇게 차(茶)는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무거운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값싸고 하찮은 물 한잔이었습니다.


찻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하고 싶은 단정의 이야기는 그런 기존의 인식을 깨보고 싶다는데서 시작했습니다. 이제껏 단정이 추구해 온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을 차(茶)를 통해 더 정제하고 단련된 모습으로 내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차를 대하는 태도.’가 결국 단정의 톤 앤 매너(tone&manner)를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리해 남겨봅니다.


1. 밝고 편안할 것.

2. 정성껏 대접할 것 = 담음새를 신경 쓸 것.

3. 차를 쉽게 대할 수 있게 알려드릴 것.

4. 위의 과정에서 결코 가르치려 들지 말 것.

5. 손님이 궁금해 할 때 답할 것.

6. 겸손할 것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 말하지 말 것)

7. 쉬어 갈 수 있게 할 것.

8. 예의가 아닌 배려를 권할 것.(조율이 필요할 때, 팀원 간, 손님 간 사이 모두)

9. 인사는 분명하게 할 것.

10. 계속 공부할 것


찻집을 여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에 이곳의 모든 것이 특별하다 여긴 건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손님들에게 이곳은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일 뿐이었죠. 제가 한 일은 그저 가게 문을 하나 열어둔 것뿐, 나머지를 완성하는 것은 손님들의 온기였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공간이라도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찻집을 연지 단 며칠 만에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석구석 신경 쓴 모습을 알아봐 주실 때면 아이처럼 들뜨곤 합니다. 차나 기물에 대해 물어보시면 저도 모르게 수다스러워지기도 하고요. 조용히 혼자 오셨던 분들이 몇 번이고 다시 걸음해 주실 때면 마음속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며 차를 내립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차(茶)도 손님도 결국은 흘러갑니다.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그 집 참 차가 맛있어“ 라는 칭찬보다, “햇살이 참 맛집이네 “라는 일상의 언어가 더 마음에 닿습니다.


제가 만드는 것이 단순한 차 한잔이 아니라, 누구나 머물다 갈 수 있는 편안한 틈이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차의 맛이나 이름은 기억할 수 없더라도 단정에서 느낀 햇살의 아름다움은 여러분들의 곁에 늘 머물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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