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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그 곁에

슈톨렌을 만들고 있어요.

by 단 정




2021년도부터 굽기 시작한 슈톨렌이 올해로 5년차 입니다. 벌써 다섯 번째라니 레시피를 배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요. 차와 함께할 디저트를 연구하다가 만난 슈톨렌은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과연 단정에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슈톨렌의 맛을 본 날 결심했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맛을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해야겠다고.


슈톨렌은 독일에서 시작된 역사가 깊은 크리스마스 디저트입니다.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른것처럼, 슈톨렌도 굽는 곳마다 맛이 다르다고 해요. 그 해에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든다는 점에서 각자의 프람(속재료=과일절임) 레시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슈톨렌의 맛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정의 프람은 건포도, 건살구, 건크랜베리, 당절임한 오렌지껍질, 햇사과, 레몬제스트 등을 엄선한 3가지 술에 재어서 만듭니다. 또 단정이기에 할 수 있는 일, 그 해 만든 단정의 청과 시럽들을 넣어요. 한층 더 녹진하고 진한 맛의 프람이 만들어지지요. 모두들 김장 준비로 바쁠때 저는 프람을 만드느라 바쁩니다. 맛있는 사과가 나오는 가을에 미리 만들어야 하거든요. 재료들이 술과 청을 천천히 흡수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예요. 제대로 맛이 들었을 때는 과일들이 쫀득한 질감으로 변해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화려한 향이 피어납니다. 이제는 슈톨렌을 만들어도 된다는 신호인듯, 그렇게 12월에 다다릅니다.

보석같은 단정의 프람

특히 단정의 슈톨렌은 밀가루가 아닌 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식감이 훨씬 밀도 있습니다. 한 알 한 알 아몬드 가루를 빚어 만든 마지팬을 넣어 굽고, 풍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라운버터에 담갔다가 슈가파우더로 옷을 입혀 완성합니다. 얘기만 들어도 정말 화려하지요? 슈거파우더가 하얗게 내려앉은 모습이 흰 눈이 쌓인 것 같고 한편으로는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를 의미한다고도 하니 포장하는 제 손길에 한결 정성이 묻어납니다.


슈톨렌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급한 마음을 좀 내려놓으세요. 한 덩이의 빵 안에서 재료들이 어우러지며 친해질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갓 구운 것을 한 번에 다 먹기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드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프람의 향기, 갈색의 브라운 버터만이 지니는 풍미, 수분감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씹는 촉감들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을 느껴보세요. 매일 한쪽씩 잘라 하루는 차와 함께, 하루는 우유와 함께, 하루는 와인이나 위스키와 함께 먹어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변화되어 가는 맛을 느끼다 보면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단정의 슈톨렌은 단순한 디저트 이상의 의미입니다. 다가온 겨울을 함께 맞이하고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미리 나누는 일. 그렇게 들뜬 12월이 지나도 긴 겨울은 고요히 남아있겠지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미 우리는 슈톨렌을 통해 충분히 온기와 마음을 나누었으니까요. 그 힘으로 거뜬히 남은 겨울을 견뎌낼 수 있겠지요.


여러분의 겨울밤 그 곁에,

그런 마음을 소복히 쌓아,

슈톨렌을 보내드렸습니다.

올 한해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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