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저는 지금 우울합니다. 이유는 알면서도 모르겠습니다.
속절없이 새해가 되어 버려서 우울합니다. 빈둥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우울합니다. 밤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해서 우울합니다. 살이 쪄서 우울합니다. 쓰다 만 글들만 보여서 우울합니다. 평생 놀고먹을 돈이 없어서 우울합니다. 뭐라도 했다는 안도감에 계속 도망치는 내 모습을 보니 우울합니다. 내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우울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손바닥만 한 휴대폰 화면만 응시하고 있습니다.
관성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물리 시간에 듣던 이 단어가 삶 전체에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리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게 결국 인간인가 봅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우울한 이유들이라도 써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쓰기 전에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한 장을 가득 채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우울한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어떤 이유는 쓰려고 보니 시답잖아 보입니다.
관성(inertia)의 어원은 '게으르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iners'라고 합니다. 'inertia' 자체도 '무력', '타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고에 존재하는 이러한 보편성을 느끼고 새삼 놀랐습니다. 뉴턴은 관성을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오늘만큼은 이 글을 작가의 서랍에 넣어두지 않고 바로 발행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성을 상쇄하여 정지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관성으로 바꿔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