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좀을 통해 내 속의 죄성을 보다.
#일상의 영성 1 - 죄성
지겹다. 무좀
이놈에 무좀, 정말 지겹다. 언제부터 나와 함께 했는지도 이젠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원하지 않게 오랜 친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부끄러운 친구다. 남들에게 떳떳하게 소개할 수 없는 그런 친구다. 여름이 되면 편안하게 샌들을 신고 다니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발톱 무좀이 심하다. 일반적인 발톱보다 두 배는 두껍고 검은색을 띤다. 주변 사람들이 내 발톱에 자리 잡고 있는 무좀 친구를 불쾌해할 까 봐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실내에서는 양말을 쉽게 벗을 수가 없다.
무좀의 시작은 중학생 때부터
중학교 시절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나서 얼굴이 멍게가 된 적이 있었다. 병원에 갈 형편은 못되었다.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봤다. 그중에서 죽염을 물에 타서 세수를 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가 있었다. 죽염으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따끔거리고 뻘겋게 달아올라 힘들었다. 하지만 얼굴이 멍게가 되는 것보다, 약간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참았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되어서는 여드름이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게 되었다. 죽염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 호르몬의 영향이 줄어 들어서 인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여하튼 여드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무좀이라는 놈이 날 찾아왔다. 찾아왔을 때 문전박대했어야 하는 건데…. 때늦은 후회가 몰려온다.
상상하면 더럽긴 하지만 내 발가락을 묘사하면 이렇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선천적으로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가 좁다. 발을 씻고 나와서 의식적으로 물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가락이 물기를 머금고 있게 된다. 무좀이란 놈은 이 물기를 너무 좋아한다. 나에게 이런 발가락을 물려주신 어머니도 발가락 무좀으로 고생하셨다. 발을 씻고 나서는 반드시 건조시켜줘야 한다고 늘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잘하지 않았다. 그냥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귀차니즘으로 인해 중학생 때부터 발가락 사이가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냥 방치했다. 점점 더 심해졌다. 하는 수없이 동네 약국에서 무좀약을 사서 발랐다. 며칠 동안은 간지럽지 않고 참을 만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내 간지러워졌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급기야 무좀이 발톱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발톱이 조금씩 검게 변했다. 검은색을 띤 발톱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거칠어졌다. 급기야 대학교 2학년 무렵에는 발톱이 푸석푸석해지고 두껍게 변해버렸다. 군 입대 후 전투화를 신으면서부터는 더욱 심해졌다. 무좀이 있는 남자들의 상당수는 군대에서 결려 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친구가 “너도 군대 생활하면서 무좀 걸린 거야?”라고 물어봤을 “아나야.”라고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린 적이 있다.
무좀과 죄성의 상관관계
왜, 내 친구 무좀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어 졌을까? 우연히 무좀과 나의 죄성이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좀과 죄성이라 잘 연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며칠 전,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려는데 비가 제법 내렸다. 일행들은 양말이 젖을 까 봐 양말과 운동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답답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부끄러운 무좀 친구를 가리기 위해 양말을 벗을 수 없었다. 그때 문득, 무좀과 죄성에 대해서 스쳐가는 생각이 떠올랐다.
27년 전 중학생 시절, 얼굴을 뒤덮었던 여드름 때문에 고생을 했었다. 멍게처럼 번져가는 여드름을 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무좀은 달랐다. 양말과 운동화에 가려서 그 누구도 내가 무좀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여드름을 잡을 때처럼 열심을 내지 않았다. 아니 방치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방치와 무관심으로 서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발톱에 무좀이 자리 잡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40대가 되었고, 무좀은 익숙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공예배(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를 빠짐없이 드리고, 탈북민을 섬기는 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은 타인의 눈에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건실한 성도의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죄가 몸에 딱 달라붙어서 언젠가부터는 죄를 떨쳐버리고 회개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27년 동안 무좀이라는 놈을 방치해서 이젠 치료가 싶지 않아 그냥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칭찬을 들으면 우쭐해지고, 교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람들의 칭찬이 좋아서 여드름을 치료하듯이 열심히 보이는 곳을 빛나게 치장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영혼은 뒷전이 된다. 하나님 외에는 관심 없는 나의 영혼을 나조차도 외면하게 된다. 이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양말에 가려진 무좀과도 같은 것이다. 영혼이 더러워지고, 죄로 가득해져도 사람들은 내 겉모습으로 인해 감동을 받고,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 그럴수록 영혼을 채우기보다 보이는 것을 빛나게 치장하는 것에 열을 내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기독교사 모임에서 대표를 맡고, 모임을 위해서 휴직을 결정했을 때, 돌이켜 보면 부끄럽게도 결정의 순간 판단의 기준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다.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이 주된 판단의 기준이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내 공로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 내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죄성이 언젠가부터 내 영혼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좀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방치하고 묵인해서 치료가 힘들게 된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피부 병원에 다녀왔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겨우 의사를 만났고, 딱 30초 만에 진료가 끝났다. 하지만 의사의 한마디 말이 가슴에 박혔다. “바르는 약을 1년 동안 꾸준히 바르세요. 완치율이 30%입니다.”라고 의사가 말했다. 10명 중 7명은 무좀과 계속 친구로 남아야 한다는 부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10명 중 3명씩이나 완치될 수 있다.”라는 말로 들렸다. 꾸준히 바르면 무좀과 결별할 수 있는 해법을 의사가 제시해 준 것이다. 과거에도 짓고, 오늘도 짓고, 내일도 짓게 될 수많은 죄악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준 것 만 같았다. 누적되어 온 고질적인 영혼이 병듬과 죄악이 꾸준히 하나님과 교제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의사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부터 무좀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냥 묵인하고 방치해 버린 채 습관적으로 살아온 나의 죄성과의 전쟁 말이다. 1년 동안 꾸준히 발라도 완치율이 30% 정로라고 한다. 그만큼 무좀을 치료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내 안에 오랬 동안 습관처럼 남아있는 죄성은 오죽하겠는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같다.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처럼, 내 안에 있는 모든 죄를 몰아낼 수는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 승리할 것이다.
무좀과의 전쟁
무좀 초기 단계에 치료했더라면, 충치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치료를 했더라면, 죄가 내 몸에 습관으로 자리 잡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섰더라면 하는 후회를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늘 늦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신다. 지금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세 번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에게도, 수많은 성도를 가두고 박해한 바울에게도, 의심 많은 도마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느리겠지만 꾸준히 내속에 죄를 몰아내기 위해 예수님이 내밀고 있는 손을 다시금 붙잡는다. 말씀으로, 기도로, 삶으로 예수와 닮아가는 제자 된 삶을 살아가겠노라 다짐해 본다.
보이는 외현적인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