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 사는 그들은 여행을 자주 갈까?
미국에서 산 지 2년이 되어간다.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미국에서 뭐하고 사느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결혼 이후 미국에 와서 살면서 뭐하면서 살았는지, 특히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살던지 얼마나 어떻게 다르겠냐만은 그래도 역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워라밸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가 좋은 편이다. 이 지역의 IT기업에 다니고 있는 남편의 하루를 보면 보통 아침 8-9시 즈음에 출근해서 (가끔은 7시에 '스스로' 출근하기도 한다.) 약 40-50분 정도를 걸려 직장에 도착한다. 그리곤 오후 5시 정도면 퇴근해서 딱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한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 비하면 꽤- 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평일에는 남편의 퇴근 이후에 함께 저녁을 준비해서 먹는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아이 보는 것을 좀 쉬라고 남편이 아이를 보고 나는 저녁을 준비할 때가 많다. 그렇게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나면 이르면 7시 정도가 된다. 그럼 우린 밀린 한국 예능을 본다던가, 가까운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간다던가, 혹은 산책, 사람 구경 겸 장을 보러 간다. 그래도 미국은 워낙 다양함을 두루 갖춘 나라라 그런지 장을 볼 마트도 여러군데 (내가 돌아가며 가는 마트만 해도 4군데이다.) 커피를 마실 곳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일상들이 지루하지 않다.
가끔은 교회나 남편 회사의 지인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한다. 바비큐는 미국에서 굉장히 일상적인 어떤 액티비티인데, 우리 동네에는 공원들마다 대부분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어떤 곳은 미리 해당 공원을 통해서 예약을 해야 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먼저 가서 준비를 해야만 사용할 수 있기도 하다.
어쨌든 그런 바비큐 장소들은 주말에는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많은 음식들을 준비해와서 식사를 즐긴다. 이런 모임들은 아는 사람들끼리 주최해서 여는 것이 일반적인데, 뭔가 미국답게(?) 개개인의 지인들도 무작정 데려와서 소개를 시켜주는 일이 다반사이다. 특히 이 곳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실리콘밸리의 특성상 엔지니어링, 디자인 분야에서 유학한 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한, 두 다리를 건너면 다 아는 사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이 곳에 온 주부들은 보통 남편의 지인 위주로 사람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이런 바비큐는 미국 문화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 어우러지고 사교적인 활동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식사 방법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 있는 아파트들도 단지 안에 꼭 이런 바비큐 장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곳으로 지인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를 한다던가, 가끔 가족끼리 기분 내고 싶을 때에 고기와 컵라면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굳이 아파트 안이지만 집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부대시설들이 집 값을 올리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부대시설을 가지고 있는 아파트들은 보통 관리사무소에서 (leasing office라고 부른다.) 바비큐 장소, 수영장, club room (아파트 내부의 휴식공간 - 소파나 TV, 간단한 게임시설들이 있다) 등을 관리하는데, 어떤 아파트들은 주기적으로 요리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요리사들을 초청해서 그 날의 주제 되는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아파트 내부에 마련된 부엌에서 직접 알려주고 함께 맛을 보기도 한다. 이런 행사들에 아파트 주민들은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다. 나는 한 번 참석해봤지만 꽤나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외에도 어린 아이가 있는 지금은 좀 어렵지만, 아이가 있기 전에는 가끔 한국의 부부들처럼 영화관을 가기도 했다. 이럴땐 한국에서 개봉 예정인 외국 영화를 미국에서 먼저 볼 수 있다는 짜릿함이 있다. 하지만 자막이 없다는 것이 영어가 능통하지 못한 나의 큰 문제다. 그렇지만!!! 미국의 영화관에서는 하도 외국인이 많아서 그런지 자막을 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는 것! (나중에 찾아보니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 영화관 좌석에 설치해서 볼 수 있는 기계인데 이 덕분에 나는 덩케르크를 미국 영화관에서 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막 신경 쓰지 않고 “쉬는 느낌으로 편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는 한국영화가 정말 정말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우리 지역의 한국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갔다. 이 지역에 아시안이 많아서 그런지 특정 영화관(AMC)에선 주기적으로 유명한 한국 영화들을 상영하더라. 남편은 여기에서 가끔 상영하는 한국영화에 대한 소식을 회사에서 건너 건너 어떻게 듣고는 영화보러 가자고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본 영화가 ’택시운전사’, ‘신과 함께’ 다.
이 많은 것들 중에서도 미국 살면서 가장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여행에 대한 것. 한국에 살 때 국내 여행을 많이 하지 않기도 했지만, 미국에 사니 여행 할 기회가 꽤 자주 온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한국사람, 미국사람, 그 외의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 2017년 6월에 미국에 입국한 나의 경우에는 반년동안 멕시코, LA, 시카고 부근, 샌디에고, 몬트레이 등 4-5번 도시를 여행했다. 평소 한국이었다면 일년에 한, 두번 할 여행을 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도 커서 갈 곳도 볼 것도 많기도 하고 미국 내에서는 이동이 편하기도 하고, 이와 더불어 남편이 회사에서 주체적으로 휴가를 쓸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곳에 사는 서,너 가정의 한국인 부부들과 약속을 잡을라치면 다들 하와이, 뉴욕, 시애틀 등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느라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이렇게 자주 여행을 다녀서 그런지 한국에 사는 친구들이 미국에 사는 우리부부가 삶을 잘 즐기고 산다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여행이란 여가를 보내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취미이자 쉼이고, 직장에서도 그 권리에 대해 잘 지지해 주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
특히, 이 곳에 있는 한인들은 부모님이나 친지들이 한국을 포함해서 먼 나라에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연휴나 연초, 연말 등 미국인들은 부모님, 친척들과 함께 보내는 그 가정적인 시간을 한인들은 각자 여행을 가는 것이다. 어쩌면 가족들과 보내야 하는 그런 시간들의 대체제로 여행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부러워 할 이런 여가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다가도 가끔은 한국에서 불금에 치킨 배달시켜 먹었던 것이 생각나며 그리울 때가 있다. 어쨌든 내가 익숙하고 주어진 것들을 잘 누리는 것은 한국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낸 결론은 한국은 싱글들이 살기에 좋은 곳, 미국은 부부가 살기 좋은 곳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은 주어진 생활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 수 있는 곳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