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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Aug 03. 2020

글쓰기 수업 1

사람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알게 되는 건 놀랍긴 해도 좌절할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 첫 영어 수업에 들어간 내가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꼬부랑거리는 그림을 칠판에 정갈하게 그리던 선생님이 그걸 알파벳이라고 불렀다. 크고 대범한 그림은 대문자, 뭔가 소심해 보이지만 귀여운 그림은 소문자라고 했다. 선생님은 각자의 공책에 알파벳을 써보라고 했다. 오케이, 그리는 건 자신 있으니까.


칠판에 써진 것을 공책에 그리며 내가 알파벳이라는 것을 제일 예쁘게 쓰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옆에 앉은 애가 “쥐~는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 그건 이렇게 한 칸 아래로 내려서 쓰는 거야.”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며 쓴 것에 어떤 규칙이 존재함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당황하지 않은 척 왜 자기 건 안 쓰고 남의 걸 보냐고 말하려는데 걔의 공책에는 이미 알파벳이 죄다 써져 있었다. 내가 쓴 것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별것 아니라는 듯 휘갈긴 투가 어쩐지 쿨하고 멋져 보였다. 게다가 알파벳을 요리조리 조합해서 쓴 걸 가리키며 나에게 말하는 게 아닌가. ‘에이는 애프을~ 비는 버네너~ 씨는 카아....’       


 그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심지어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는 와중에 느껴지는 ‘실력의 차’를 가장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그 실감은 커지면 커졌지, 절대 줄어들질 않는다. ‘실력의 차’에 이어 더 어마 무시한 ‘재능의 차’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는 같은 공간에서 뭘 배우게 되는 게 마치 랜덤게임 버튼을 눌러서 지정된 게임방처럼 느껴졌다. 운이 좋으면 내가 제일 고수가 될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여러 레벨들이 모인 곳에서 나는 자주 중간을 차지했다.     


 배운 것들로 같은 모양의 시험을 보고, 줄 세움을 당하고, 줄 사이사이 커트라인으로 어딘가에 붙고 떨어지는 때에 나는 매 수업에서 고수이길 열망했다. 내 실력이 더해지면 좋지만 나머지가 바보가 되어도 괜찮은, 이를테면 상대적인 바람이었다. 나를 뺀 이들의 실력이나 열심이 내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경쟁인 수업의 연속이었다. 스물넷의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조금 다른 성격의 수업에 참여하게 됐는데, 엄청난 ‘실력 차’와 ‘재능 차’를 느끼면서도 그것이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대감을 안겨주는, 글쓰기 수업에 가게 된 것이었다. 첫 책을 쓰고 받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좋아하는 작가가 스승의 수업을 추천하는 글을 올린 게 수업을 결제하는 결정적인 한 방이 됐다. 이우성 시인이 가르치는 <무잘글: 무엇이든 잘하게 만들어주는 글쓰기> 수업이었다.      


 수업은 서울시 신사동에서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었다. 청주시 사창동에 사는 나는 집에서 네 시에는 출발해야 저녁 일곱 시 삼십 분 수업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멀리 사는 사람은 지각하기 더 어려운 법. 헤맬까 봐 택시까지 잡아탔더니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수업이 열리는 스튜디오 앞에서 한참 서성이고 시간을 끌어도 누군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금메달을 걸며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수업을 준비하던 스태프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일곱 시밖에 안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빨리 누가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거 같았다. 스튜디오의 벽과 책상이 온통 하얀색이라 나는 조금 많이 낯설고 뻘쭘했다.


 넘치는 열정과 조금의 모범생 증후군을 갖춘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노래 속에서 들리는 건 스태프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뿐이었다. 도착만을 목표로 삼고 정신없이 온 탓에 앉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진짜 서울에서 열리는 글쓰기 수업에 왔구나..! 긴장과 기대와 걱정과 부담과 새하얀 벽에 압사당할 것 같은 무렵 다행히 문이 열렸다. 똑 단발머리와 블랙블랙한 패션으로 시크함을 내뿜는 송 언니의 등장이었다. 반겨주는 이가 딱히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뭔가 모를 도도함에 위축됐지만,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한 척 잘하기로는 도가 튼 나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가 좀 일찍 와서 혼자 뻘쭘하게 앉아있었어요~~^^”

“아..”

“저는 청주에서 왔거든요~~~ 일찍 출발했더니 너무 일찍 왔나 봐요~~”

“청주 사세요? 저는 대전에서 왔어요.”     


 아. 서울시 신사동에서 하는 수업의 금메달과 은메달을 청주시민과 대전시민이 나란히 차지하다니. 그 이후로 나와 송 언니는 수업이 끝나고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동행하는 사이가 되었다. 청주와 대전에서 왔다고 소개하면 사람들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떻게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냐며 우리를 걱정했다. 얼마 뒤 알게 된 건 우리가 한 시간 반 가량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갈 때, 서울에 사는 수강생 중 많은 사람이 비슷한 시간 지하철을 타야 귀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업을 듣고 얘기를 하고, 같이 걷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수강생들은 서로에게 엄지를 치켜드는 날이 잦아졌다.     


 이우성 선생님은 내가 만나 본 모든 선생님을 통틀어 가장 옷을 잘 입고, 젊은 감성을 지녔고, 풍부한 감정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며 미남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떤 모습을 딱히 상상할 수가 없었지만 만약 상상했다 하더라도 그것과 선생님은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선생님은 대학 후배들을 만나러 온 아주(?) 고학번의 선배 같았다. 그런 선배를 실제 대학에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소설에서 자주 보았다. 까마득한 후배를 만나러 와서 자신 어린 조언과 경험을 쏟아부을 선배는 요즘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없다.)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쓰기의 엄청난 선배를 만난 기분이라 든든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 글을 보여주었던 모든 선생님들에게도 그랬지만,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싶었다.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도 알고 싶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설마설마하다가 끝내 빛을 발하는 사람이 나이길 바랐다. 나만 품은 욕심은 아니었을 거다. 토막 낸 시를 자기만의 순서로 이어 붙여 보라든지, 모든 단어가 없어질 때 살리고 싶은 세 가지 단어만 골라 한 문장 글을 지어보라는 과제가 실시간으로 주어지면 너무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뭔가를 써서 내면 내 문장만 진부하거나 힘이 잔뜩 실려 있는 거 같아 부끄러웠다. 어떻게 그렇게들 기발하고 담백하냐고 묻고 싶었다.      


 한 번은 자기 방에 있는 물건을 리뷰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리뷰’, 흔한 사물을 다시 보며 글을 써보는 것이었다. 나는 ‘실내화’에 관해 적었다. 보면서 쓰는 과제였는데도 집에 있는 실내화의 기능이나 생김새 등을 적지는 않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에서 꼭 신는 실내화를, 좁디좁은 내 원룸에서 끼고 사는 이유를 적었다.  자기 연민에 흠뻑 젖은 글이었다. 늦은 밤까지 낑낑대다 제출한 과제여서 평타는 치겠지 예상했다.


 그러나 다음 날 수업에서 나는 처참한 기분으로 앉아있어야 했다. 여러 사람에게 들린 종이 뭉치에서 내 과제만 찢어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친숙하게 느끼던 나의 옆 고장 친구 송 언니가 활약을 해서 더 그랬다. 송 언니는 자기 침대를 리뷰했는데 나는 송 언니의 글을 읽으며 그녀의 침대 모양과 색깔과 침대에 올려져 있는 물건을 천천히 상상할 수 있었다.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묘사가 가득한 글은 너무나 삼삼해서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짧아서 아쉬울 정도였다. 에이포 용지 반만 한 길이에 아득바득 눈물을 떨구어 놓은 내 글과는 달랐다. 내가 썼지만 여러 번 읽기에는 너무 느끼했던 것이다.


 내 바로 옆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있던 사람들이 놀라운 글을 써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첫 과제부터 선생님의 극찬을 받은 수강생도 있었고, 매번 평타 이상을 치는 송 언니를 비롯한 막강 멤버들도 있었다. 그들이 언제부터 글쓰기를 연마해왔는지 알 수 없으므로 내 앞에 다가온 것이 ‘실력 차’인지 ‘재능 차’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랜덤 배치된 다양한 레벨 사이에서 위축되지 않으려고 자신 있는 것을 헤아리곤 했다. 끝날 때까지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과제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내자는 다짐, 가장 최연소 수강생이라는 사실이었다.(세 가지는 필요할 거 같았다.)


 글을 잘 써보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는 사람들이 나보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지 알게 되는 건 놀랍긴 하지만 좌절할 일은 아니었다. 멋쟁이 선배와 예측불허 수강생이 함께 하는 일곱 번의 수업이 지나면 나는 무엇이든 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무잘글>의 ‘무엇이든’은 Everything이 아니라 Whatever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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