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은 Aug 15. 2020

글쓰기 수업 2

<고백하는 글쓰기> “정말 별의별 얘기를 다 썼구먼.”

네 번째 수업을 들은 날, 영영 피하고 싶으면서도 은근히 기다리던 과제가 주어졌다. 이름 하여 <고백하는 글쓰기>.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나 자신을 고백하는 글을 A4 한 장 분량으로 써오는 과제였다. 선생님이 과제를 설명하자 우리는 부담감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받아 적는 사람도 있고 아예 녹음을 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부담의 낌새를 눈치챈 선생님이 조언을 덧붙였다. 지금까지 배운 글쓰기 방법들을 떠올려가며 쓰지만 막상 글을 쓸 때는 그 모든 방법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가령 첫 문장을 잘 써보려고 그 문장에만 매달려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뭐랄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말 같다가도 모든 걸 잊고 쓸 정도로 어떤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얼른 쓰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는 덴 확실한 효과가 있는 듯했다. 스튜디오가 조용한 열의로 가득 찼다. 적어도 이 자리에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들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모든 유혹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글을 완성할 자신을 믿고 있는, 뿌듯함과 피로가 믹스된 표정이었다.     


집에 가는 길 송 언니가 어떤 글을 쓸지 정했냐고 물어봤다. 내 머릿속에서 글감 콘테스트가 펼쳐지고 있던 참이었다. 이걸 쓰면 너무 불쌍해 보일 것 같고, 저걸 쓰면 우리 가족이 이상해 보일 것 같고... 남이 본다고 생각하니 쓸 만한 글이 하나도 없었다. 송 언니에게 한숨을 내쉬며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분명 언니도 고민이 많겠지. 매번 뭐에 대해 쓸 거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했으니까.

별 기대 없이 “언니는 정했어요?” 하고 물었는데 송 언니가 “네. 전 정했어요.”라고 했다. 명료한 대답에 놀라 송 언니를 쳐다봤다. 언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감을 확실하게 정해놓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리 개운하거나 속 시원한 표정은 아니었다. 언니를 쳐다보다가 뭐에 관해 쓸 거냐고 물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묻지 않는 게 좋을 거 같기도 했다. 얼른 언니 글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 밤에, 생각보다 간단하게 뭐에 대해 쓸지를 정했다. 계속 떠올랐지만 제일 망설였던 글감을 꺼내기로 한 것이었다. <고백하는 글쓰기>라는 말이 결정에 용기를 실어줬다.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거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하는 것. 그게 고백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펴서 첫 문장을 썼다.      

‘엄마가 복도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엄마가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것에 관하여 쓰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는 꼭 착하고 고생을 많이 한 엄마들이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는 엄마가 행복했을 순간보다 힘들었을 순간을 기억하는 딸이었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 착했으므로 엄마가 조금이라도 기억력이 쇠퇴된 모습을 보이면 마음이 불안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송 언니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운하지도 속 시원하지도 않은 표정. 비로소 이해가 됐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해결되지 않은, 하다못해 내 안에서 아직 백 프로 이해되지도 않은 일을 꺼내서, 그 사이 뒤엉킨 감정을 한 줄 한 줄 풀어내는 일을 우리는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A4 한 장도 채우지 못한 짧은 글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걱정으로 빼곡했다.     


한 주가 빠르게 지나가고 과제를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의 고백은 하나의 종이 뭉치가 되어 자리에 놓여 있었다. 다들 어떤 고백을 써왔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오시고 수업이 시작됐다. 이번 주 수업은 과제를 발표하는 게 전부였다. 써온 글을 자기 목소리로 읽고 나면 선생님이나 다른 수강생들이 합평을 해주는 순이었다.  


꽤 앞 순서에 내 글을 읽게 됐다. 일주일 동안 글 하나 쓰면서 얼마나 펑펑 울어재꼈던가. 지금은 담담하게 읽을 자신이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복도에서 길을 잃었다. 오빠는 203호, 우리는 204호. 오른쪽으로 몇 걸음만 오면 우리 집인데 방향을 착각해 계단 쪽으로 갔단다. 우리는 작년부터 이곳에 살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가 치매에 걸리는 상상을 했..... 킁! 다. 엄마가 이상한 행동을 킁! 보인 건 킁! 아니었다.....”     

채 다섯 줄도 읽지 않았는데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흐르기 시작했다. 아... 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울면 어쩌자는 거냐고! 그러나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눈물을 참으려고 했더니 콧물이 세 배쯤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왼손으로 든 과제 뭉치 뒤에 얼굴을 숨기고 오른손으로는 계속 콧물을 닦았다. 글 읽으랴 콧물 닦으랴, 그것도 티 안 나게 몰래 닦고 싶어서 나 혼자 아주 바쁘고 힘들었다.


‘엄마의 휴대폰 메모장 맨 위에 적어 놓았다. 오빠는 203호, 우리는 204호.’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모든 부끄러움이 한 번에 닥쳐왔다. 내가 너무 요란을 떤 건 아닐까 하고 종이를 슬며시 내려놓는데 내 앞과 옆에 앉은 몇 명의 수강생들이 울고 있었다. 한 언니가 티슈를 뽑아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 언니는 이미 젖어있는 티슈를 꾸깃꾸깃하게 들고 있었다.      


내 글 이후로도 일곱 명의 고백을 들었다. 내가 제일 솔직하게 썼겠지? 생각한 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알고 보니 종이 뭉치엔 남들한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가득가득 들어있었다. 누나를 생각하며 쓴 글도 있고, 아빠를 향해 쓴 글도 있었다. 송 언니는 나처럼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언니는 나처럼 울지도 않고 끝까지 담담하게 읽었다. 내 것보다 길고 자세하고 더 솔직한 글을. 나뿐 아니라 수업에 온 모든 수강생들이 송 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또 들으면서 놀랐다. 이 글은 어떻게 이렇게 솔직할까? 이 글은 어떻게 이렇게 잘 썼을까? 이 글은 어떻게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나는 송 언니가 쓴 글의 내용이 아니라 글 자체가 우리를 놀라게 했음을 깨달았다. 송 언니가 어떤 글감을 선택했고, 그것에 관해 어떻게 썼으며, 그것을 누군가 읽도록 공개했다는 사실이 구체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우리를 감탄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과정이 고백이고, 모든 과정이 글이라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용이 글의 전부라고 생각했기에 겁이 많았다. 누군가 글의 내용만 보고 나를 이렇게 저렇게 판단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더 솔직하게 써볼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글을 써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주는 사람들을 만난 덕분이기도 했다. 글을 읽고 나서도 송 언니는 송 언니였다. 그건 아빠 얘기를 썼던 혜 언니도 다른 수강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무엇을 쓰든 나일 수 있었다.  


내 얘기 한 편도 겨우겨우 쓰던 내가 이 책에는 마르고 닳도록 썼다. 글쓰기 수업에서 그렇게 거창하게 바라봤던 자기 고백을 매일매일 자진해서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슬프고 힘든 와중에도 나중에 이 주제로 글을 써봐야지 하고 생각한다. 스스로 순탄하게 살지 않았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너무 힘든 삶을 산 사람과 비교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거의 고백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다.     


  <무엇이든 잘하게 만들어주는 글쓰기> 수업에 글을 너무너무 잘 쓰는 사람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내 글이 너무 부끄러워서 더 쓰고 더 솔직해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나의 첫 글쓰기 수업은 수영장 초급반 같았다. 갓 들어온 입문자와 중급반 직전 실력의 사람들이 섞여있는. 물장구만 겨우 치는 듯한 글을 써와도 서로 감탄하고 칭찬만 해주는 사이좋은 초급반.


그때 만났던 초급반 수강생들이 자주 생각난다. 선생님과 수강생 몇 명은 인스타그램 팔로우도 하고 있는데 그들이 눌러주는 좋아요는 이상하게 더 힘이 된다. 잘하고 있어! 더 써보자!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다. 내 생의 두 번째 책이 만들어지면 이우성 선생님의 카페에 찾아가서 직접 드리고 싶다. 16P라는 카페다. 공간으로서는 카페이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이우성 선생님이 계시면 뭐라도 한 마디 하면서 드려야겠지? “제가 그래도 계속 썼습니다. 선배..아니 선생님.” ,“제 콧물이 묻어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세요...?”

 선생님께든, 초급반 수강생들에게든, 이 책을 읽는 누구에게든 이런 얘기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다.

“정말 별의별 얘기를 다 썼구먼.”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수업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