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의 뒤통수는 맞더라도 동기의 뒤통수는 보호하기 위하여
아주 열심히 해낸 일이 있었다.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도 다른 영역까지 끌어안아 개선시키고, 책임지고. 돌이켜보면 나를 아낌없이 땔감으로 집어넣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니까. 잘되면 내가 좋은 거니까.
그 일이 잘 안됐다. 기대했던 결과 말고 예상했던 결과조차도 달성 못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이든 후든, 내 노력을 알아주는 이가 함께 일한 사람 중에는 없어 보였다. 어찌 됐든 일은 돌아가니까 뭐라도 해야 하고. 하던 대로 혹은 하던 것보다 더 노력해야 할 듯싶었지만 이상하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몰랐다기보다는, 그게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뭐라도 해보려다가 말고.. 해보려다가 말고.. 언젠가부터 내가 한 일이라고는 가만히 있기와 가만히 있는 나를 용서하지 않기였다.
그 일을 계속 모른 척한 채로, 하루는 내가 침 튀기며 다른 일의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데 나를 고용하신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다은아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잘못 들었나 싶었다. 여태껏 '열심'을 부정당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를 빤히 보던 고용주께서는 설명을 덧붙였다.
"너어무 열심히 하다 보면, 네가 지쳐.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해도 결과가 뜻대로 안 될 수가 있거든. 누가 그 노력이라도 알아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고. 성과가, 격려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나가떨어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해. 중간중간 놀듯이 그렇게 힘 빼고 해."
그 말을 듣는데 손을 놓고 있던 그 일이 떠올랐다.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했는데... 하고 되뇌던 일.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주었던 일. 노력을 의심하게 되어버린 그 일에서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나 열심히 했구나! 속 시원한 확신이 들었고, 실망하고 허탈할 만했네, 인정할 수 있었다.
부지런하냐고 물으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 게으른데 대답하는 사람이지만,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파워 당당하게 그렇다 대답하는 사람도 나다. 주어진 일 열심히 한다. 뒤통수 맞았으니 이제 덜 열심히 할 것이냐 하면. 그렇다! 놀면서 일할 거다. 그렇지만 하나는 누가 뭐라 해도 아주 열심히 할 작정이다. 그건 나의 목적을 가다듬는 일이다. 뭘 해내고 싶은지를 마음껏 고민하며. 언제든지 내게 돌아올 만족 하나를 열심히 마련해둘 것이다. 결과의 뒤통수는 맞더라도 동기의 뒤통수는 보호하기 위해서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