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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Jun 07. 2020

알바 권승연

얘가 퇴근하고 나서 혼자 남으면 어떤 깨달음이 다가와 나를 툭  친다.

일하는 카페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온 권승연으로부터 요즘 많은 것을 얻는다. 나는 이 카페의 첫 아르바이트생이자 첫 직원이다. 꾸준히 손님이 늘어난 덕분에 두 번째 아르바이트생인 권승연을 만나게 되었다. 권승연이 오고 나서부터는 얘가 일하는 모습을 보거나, 일하는 중간에 대화하거나, 얘가 퇴근하고 나서 혼자 남으면 갑자기 어떤 깨달음이 다가와 나를 툭 친다. 그 충격으로 나는 잠깐 튕겨 나간다.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주 5일 근무하는 나와 주말에만 근무하는 권승연은 토요일에만 한 시간 만난다. 얘는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데, 나는 오후 5시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그 한 시간 동안에는 어려웠던 음료를 같이 만들어 보거나, 레시피를 추가로 알려주거나, 음료 만들기 외의 부가적인 일들 가령 재료 잡기, 배달 준비 등을 한다. 5시부터 6시는 식사 전에 오기도, 식사 후에 오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손님이 뜸해지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일을 알려주고 배우고 해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시간이 지나있다. 우리는 매주 “벌써 한 시간 지났어?”라고 말한다.” 두 명이 함께 일하면 매일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가지 않을까.”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딱 한 시간, 그것도 이렇게 ‘일’만 열심히 하다가는 당최 권승연과 친해질 틈이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일인 근무 형태에 잠깐 만나는 사이라지만, 그렇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처럼 인사만 띡 하고 인수인계만 띡 한 뒤 헤어지는 삭막한 사이는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중간중간 (쓸데없는)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오늘은 점심으로 뭘 사 먹었는지, 힘든 손님은 없었는지, 어려운 메뉴가 있었는지부터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 과제는 할 만한지, 남자친구와 계속 잘 지내고 있는지까지... 내 질문 목록을 당하지 않고 보기만 했는데도 숨이 턱 막히는 사람이 여럿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쓰다 보니 살짝 눈치가 보인다. 나는 요즘 시대와는 안 맞는 최고 오지라퍼 상사(?)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행히 권승연은 대부분의 질문에 살뜰히 대답한다. ‘뭘 이런 거까지 물어?’ 하는 극혐의 표정은 띠지 않았다. (수많은 알바 경력이 얘에게 남긴 건 사회생활일까?) 그러나 아직은 뭘 먼저 묻거나 나에게 말을 마구 걸지도 않는다. 때론 내게 잔뜩 치우쳐 있는 대화가 아쉽기도 하다. 가끔은 뭔가 꼬치꼬치 먼저 물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권승연과 한 시간 만남이 쌓일수록 내 질문은 더 다양하고 구체적 이어진다. 이래라저래라 코치하고 싶어서 꼬치꼬치 묻는 건 아니다. (소소한 라임) 카페에 찾아온 얘의 남자친구를 한두 번 본 적이 있는데, 왜 자꾸 그의 존재를 살피게 되냐면 그건 오로지 권승연의 안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근거하여 연인이 안부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해볼 때, ‘그와의 관계가 건강히 이어지고 있는지, 네게 힘을 주는지, 고민을 주지는 않는지’를 권승연만을 위해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나여도 그렇게까지 물을 수는 없다.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요즘 남자친구랑은 잘 지내?” 달랑 이거뿐. 그럼 권승연은 “네.” 한다. 그게 끝이다.     


 5시, 권승연이 퇴근하고 나면 나는 혼자 남아 일을 하는데 가끔 사장님이 들렀다 간다. 사장님은 나랑 짧게 만나는 그 순간에도 거의 매번 질문을 던진다. “요즘 별일 없어?” 라든지 “남자친구랑은 잘 지내?”, “글은 잘 쓰고 있어?” 같은 질문들이다. 대부분 살뜰히 대답하지만 몇 개의 질문에는 나도 “네”로 일관하는데, 어느 날은 “네”하고 대답해놓고 알아채 버렸다. 방금까지 내가 묻던 말을 사장님이 내게 묻고 있다는 것. 사장님도 내 안부가 많이 궁금했던 것일까? 남자친구가 못마땅해서 물어보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그건 오직 나를 위한 질문이었던 걸까? 내가 요즘 사장님에게 질문했던가? 사장님도 때로 나와의 대화가 아쉬울까? 속으로 물음표가 마구 생겼지만, 얼굴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나는 사장님의 질문이 99.9프로의 확률로 듣기 좋았는데, 권승연도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권승연이 화장을 정성껏 하고 출근했다. 평소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편한 옷차림으로 일하던 애가 눈꼬리도 그리고 아이섀도도 칠하니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바쁜 시간대를 견디고 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얼굴에는 색이 돌았다. 색을 얹어놨으니 당연하지. 아무튼 예뻐서 “웬일로 화장했어?”하고 물으니, “그냥 오늘 좀 일찍 일어났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퇴근하는 권승연에게 “오늘 너무 예쁘다. 평소에도 좀 일찍 일어나봐.” 했더니 웃었다. 나도 웃으면서 한 칭찬이었는데 얘가 뒤를 돌자마자 후회가 되었다. ‘화장을 어울리게 잘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음을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깨달았다.     


 매일같이 열심히 화장하고 꾸며야만 어딜 돌아다니는 나는, 힘을 주지 않고 출근할 줄 아는, 출근할 수 있는 권승연이 오히려 부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 애를 나처럼 만들려고 했다니. 기분이 상했을까 하는 염려도 됐지만 다음 주에 화장하고 올까 봐 그게 두려웠다.          


 한 주가 지나고 오후 5시에 본 권승연의 얼굴엔 화장기가 없었다. 피로만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권승연이 정말로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아이섀도와 아이라인이 얹히지 않은 권승연은 역시 편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토요일에만 만나던 권승연을 월요일 오후 1시에 만난 날이 있었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이 가지는 첫 회식이었다. 권승연이 자기는 다 좋다고, 상관없다고 해서 확실하게 내가 좋은 요일과 시간에 만났다. 사장님은 편하게 둘이 먹고 오라며 카드를 건네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장님이 우리 대화에 주주주제가 될 것을 직감했다.


우리는 초밥집에서 점심 특선과 회덮밥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평소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비슷했다. 죄다 ‘가게’와 ‘사장님’, ‘손님’과 ‘음료’에 관한 말들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나 재밌는 관심사, 가족이나 일상 얘기를 마음껏 터놓기에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만나는 우리는 조금 먼 사이였다. 아무래도 주 3회, 다섯 시간 정도는 만나줘야 가능해지지 않을까. 웃고 떠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사이일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나는 매주 나눴던 이야기에서라도 더 파고들기로 했다. (역시 피곤한 상사인가.) 너는 주로 어떤 실수를 해서 혼나냐,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냐를 묻다가 내가 아르바이트 포함 2년이 넘는 짬으로 사장님 성대모사를 하는 바람에 둘이 실컷 웃었다. 기브 앤 테이크로 나의 실수담도 얘기해줘야 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생이었을 당시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하도 덜렁대는 바람에 사장님이 한숨을 푹푹 쉬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했는데, 권승연이 한마디 했다. 최근 사장님이 자기에게 한 말이랬다.     


“승연이 너는 꼼꼼한데 대처 능력이 없고, 다은이는 안 꼼꼼한데 대처 능력이 좋아.”

  

 그 말을 듣고 먹던 초밥이 목에 걸릴 뻔했다. ‘현재형’의 말투가 내 명치를 때렸기 때문이다. 음. 권승연 앞에서 실컷 꼼꼼해진 척했는데 다 틀렸군. 또 하나, 사장님이 우리 둘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어서 놀랍고 웃겼다. 같이 일하는 동료처럼 느껴질 정도로 편할 때가 있는 사장님이 나의 고용주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어쨌든, 일을 계속 맡길 만한 강점이 내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웃겨서 다혜에게도 이 말을 전해줬더니 “안 꼼꼼하니까 대처할 일이 생기고, 대처한 일이 많으니까 대처 능력이 좋은 거지.”라고 했다. 나는 이제야 나를 좀 안듯이 굴었는데 얘는 당연한 걸 뭘 말하냐는 표정이었다. 가끔은 주변 사람에게 듣는 객관적인 말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떤 모습은 지속해서 모른 척하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또 까먹고 자신만만하게 살아갈 테지만.     


 이 카페에 입성하기 전에도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주구장창 해왔지만, 그 시절엔 아르바이트 동료들과 북적거렸던 기억뿐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시간만큼 일하는데도 사장님과 직원인 나와 아르바이트생 권승연이 있는 이곳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나를 다시 발견하고, 사장님도 권승연도 날마다 새로 알아간다. 직원으로서 아르바이트생을 처음 접해서인지, 그 아르바이트생이 권승연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한 시간씩의 만남이 어느덧 육 개월에 이르렀다는 사실, 아무래도 권승연의 특기는 금방 그만두지 않는 게 맞다는 사실은 알겠다. (권승연이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나는 저 아이의 특기가 ‘그만두지 않기’일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권승연이 카페에 들어오고 난 후로 내가 얻은 것을 걔는 짐작조차 못 할 것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쓸 건 더 모르겠지.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어서 “나 너가 등장하는 글 썼는데, 본명 그대로 써도 돼?”하고 물어봤는데, “에... 저를요?”하고 맹하게 대답할 줄 알았던 권승연이 “에!”라고 했다. “써도 된다고? 제목도 아예 알바 권승연 인데 괜찮아?” 하니까 또 “에!” 했다. 지금껏 글에 써도 되냐고 물어본 사람 중 얘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개쿨한데???”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 글에서는 개쿨한 ‘권승연’이 31번 언급된다. 아, 이 말까지 합치면 총 32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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