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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Jun 22. 2020

마려운 기분

책 많은 곳 가면 똥 쌀 거 같아.

책 많은 곳 가면 똥 쌀 거 같아.     


 저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오늘로서 확신하게 됐다. 어쩌면 어렸을 때 도서관 화장실을 내 집처럼 들락거렸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할지도 모른다. 더 자라 고등학생 때 자주 간 도서관에서도. 그 외에 잠깐 들르는 서점에서도 우연의 일치겠거니 하고 넘겼으나 오늘. 중고서점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책장 사이를 유영하는데 혹시가 역시가 됐다. 책 제목들을 훑자마자 괄약근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매번 타이밍 맞게 찾아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좀 그렇지만 이 느낌을 자세히 표현하자면, 괄약근이 조일랑 말랑 조일랑 말랑 하는 느낌이랄까? 심장이 쿵쾅쿵쾅 벌렁대는 것처럼 말이다. 괄약근이 제2의 심장이라도 되는 걸까... 의심스럽다.


 심장이 벌렁거릴 땐 심장을 부여잡으면 되지만 괄약근이 벌렁거릴 땐 부여잡을 곳이 없어 책장이나 벽에 손을 갖다 대고 힘을 꽉 준다. 똥이 마려울 때처럼 초조해지지만 참는다. ‘난 얼른 책을 구경하고 싶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다고! 제발 책을 다 골라서 앉을 때까지만이라도...’


 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다. 매번 이런 식이라며 버티던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들었던 책들을 나만 알게끔 얼른 책장 구석에 꽂아두고는 화장실로 직행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싶은 건, 그렇게 향한 화장실에서 백 프로의 확률로 큰 볼일을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볼 때도 있다는 의미.) 화장실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진 적도 많다. 그럼 ‘또 당했구먼.’이라고 중얼거린다. 마려운 ‘기분’만을 물에 내려 보내고 나는 다시 책이 잔뜩 있는 곳으로 간다. 속은 것 같긴 하지만 차라리 그게 더 낫다. 책을 두고도 읽지 못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니까.      


 오늘은 그래서 좋은 날이다. 무려 화장실에 가지 않고 마려운 기분을 이겨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낀 서너 권에 책들에 힘을 빠짝 준 덕분이었을까.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말 거라는 엄청난 목표가 책 앞에서 느끼는 벌렁거림(설사 그게 심장이 아니라 괄약근을 통해 느껴진다고 해도)을 눌러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아주 빠른 시간에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을 세 권이나 가지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내가 책 앞에서 마려운 기분을 느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혜뿐이었다. 걔는 나랑 같이 화장실에 동행하기 때문이다. 쌍둥이는 괄약근이 제2의 심장인 것까지 똑같나 보다. 이렇게 대놓고 썼으니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되겠지? 최대한 고상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음. 실패한 거 같다.     


 그런데 똥 싸기 전 몸에서 약간씩 힘이 빠지며 소름이 돋을랑 말랑 하는 상태를 다들 즐기지 않나? (성급한 일반화) 남의 집에서, 혹은 어디를 바쁘게 이동하는 중에 오는 신호는 반갑지 않지만, 내 집에서 마려운 기분이 감지될 때 난 아주 반갑다. 그만큼 느긋하게 어떤 긴장감을 안고 있는 순간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긴장이 최대치가 되었을 때! 시원하게 해치우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화롭다. 그렇다. 애초에 괄약근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긴장과 이완을 즐길 줄 아는 엄청난 놈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를 마냥 풀어주기만 하거나 조이기만 하는 일에서는 마려운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긴장과 이완, 애정과 증오, 자신감과 두려움이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는 일에서 괄약근은 반응한다. 가끔 심장이 너무 뛰어서 나 자신이 어떤 일에 맞닥뜨렸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몸의 반응으로 어떤 일을 대하는 내 마음을 알게 된다. 내 괄약근이 벌렁대는 타이밍은 이렇다.


 앞서 말했듯이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를 때. 엄청난 신중함이 요구된다. 일단 자리에 앉고 나서는 집중해서 책만 읽고 싶으니까. 절대 두 번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이 돼서 울상이 될 일도 아니다. 부채감이나 조급함 없이 마냥 책만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쉽게 주어지지 않으므로 기본적으로 매우 즐거운 상태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느긋한 긴장감의 대표 사례다. 십이면 십, 마려운 기분이 찾아온다.


 그런가 하면 글쓰기가 주목적이고 중간에 잠깐 바람 쐬듯이 책을 읽는 날도 있다. 그럴 땐 조금 뒤 내 노트북을 펼쳐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책을 읽는다. 그러다 계속 읽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책을 발견하거나, 곱씹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짜릿하면서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훅 떠오르기도 한다. 바로 책을 덮고 한글 파일을 켜 두었던 노트북에 양 손을 얹는다.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여백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검은 글씨들로 채워질 땐 심장과 괄약근이 같이 벌렁벌렁거린다. 이 기분과 속도를 유지한다면 몇 시간이고 계속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마려운 기분이 들어도 의자에서 궁둥이를 띌 수 없다. 절대적으로 버텨야 한다.


 어떤 날은 카페에서 일하면서 ‘이 일만 끝내고 플레이리스트 만들어야지.’라고 계속 생각했다. 손님과 급하게 할 일이 꽤 오래 이어지고, 한참 후에야 앉아서 휴대폰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차분한 노래들로 쌈빡하게 만들어야지! 이때야말로 빠르고 확신 있는 손가락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손가락에서 힘이 빠진다.... 아.. 안돼... 제발...     


 펜을 들고 머릿속에 벌어지는 생각들을 끌어 모으거나 좋아하는 노래‘만’ 골라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책을 하나하나 고르는 일과 굉장히 닮았다. 정말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그 일들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그건 이왕이면 두 번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마려움이 아니라 마려운 기분을 선사할 줄 아는 괄약근을 소유하고 있다니. 나는 이 글을 쓰기 전보다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오늘부로 마려운 기분을 더욱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더 이상 마려운 기분을 귀찮게 여기지 않으리라! 오히려 이 기분을 선사하는 일들이 내게 많아지면 좋겠다. 그건 분명 내가 좋아하는 데다가 잘하고 싶기까지 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싫어하는데 잘하고 싶으면 너무 힘든 기분만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느긋한 긴장감을 품는다는 건 그런 면에서 얼마나 멋진 일인지! 어느 날은 너무나 폭발적인 긴장감에 속을 지라도. 어딘가로 돌진해 주저앉게 되더라도. 내게는 속았군... 하고 잽싸게 돌아갈 책장과 종이와 플레이리스트와 기타 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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