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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May 22. 2020

착한 죄책감

도대체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엄마한테 이게 제일 미안한 일인 거야?


교회 수련회를 갔을 때 일이었다.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 골고루 섞인 우리는 일곱 명 정도씩 조를 나누어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조원끼리 좀 더 알아가고 친해지려고 대화할 시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여러 질문지 중에 하나씩을 뽑아서 자기 차례가 되면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었는데 평소에 쉽게 물어보거나 꺼내지 않는 이야기를 듣기에 좋았다. 민감한 비밀을 캐내는 질문은 아니었고 ‘가장 후회하는 일은?’이나 ‘내가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던 때는?’ 같은 질문들이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대뜸 “나는 말이야~”하고 말하는 주제는 확실히 아닌 것들 말이다.

 친하게 웃고 장난치던 언니 오빠 동생들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작정하고 질문과 대답만 하는 이 시간의 장점은 대답하는 한 사람을 향해 모두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였다. 앞 사람의 진지함이 그 다음 사람의 솔직함을 끌어냈다. 대충 얼버무리고 마는 사람 없이 각자 마음속에 담아 둔 대답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웃긴 얘기와 슬픈 얘기가 정해진 바 없이 들쑥날쑥 오갔다.


 앞 사람들의 제일 기억나는 순간과 이상형과 가보고 싶은 여행지와 돌아가고 싶은 때를 듣다보니 빠르게 내 순서가 왔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손에 쥔 질문지에는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이라고 쓰여 있었다. “제가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 초등학교 일 학년 때 갔던 소풍날인데요...” 라고 말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질문지를 뽑자마자 생각난 순간은 이거뿐이었다. 진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처럼 망설임 없이 여덟 살 나의 마음을 떠올렸다.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도 이 날을 생생히 떠올리게 될 것을 여덟 살의 나는 정말이지 몰랐다.     

 

 소풍 전 날이면 엄마와 나와 다혜는 꼭 마트에서 같이 장을 봤다. 김밥에 들어갈 햄을 우리가 골라 오겠다며 엄마보다 먼저 뛰어가서는 깔려있는 상품들 중에 가장 통통하고 굵직한 햄을 골랐다. 그리고 맛살 대신 햄을 두 개씩 넣자며 졸라댔다. 김밥 하나도 예쁘게 구색 맞춰 싸는 걸 좋아했던 엄마는 그래도 재료를 다 넣어야 맛있다며 햄도 사고 맛살도 카트에 담았다. 시금치, 계란, 단무지도 담았다. 김밥 재료 쇼핑이 끝나면 계산대로 향하는 길에 있는 과자와 음료수 코너에서 가지고 갈 간식도 각자 하나씩 골랐는데, 쫙 펼쳐진 알록달록한 과자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건 가장 즐겁고 짜릿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처럼 과자를 고르려는데 엄마가 음료수만 사서 가자고 말했다. 이번에는 과자 대신 감자튀김을 싸 가면 어떠냐는 말을 덧붙였다. 그 무렵 엄마는 집에서 감자를 길죽하게 썰어서 직접 튀겨 냈는데 파는 것만큼 바삭하지는 않지만 폭신하고 말랑하고 고소한 맛이 있었다. 감자튀김을 하는 날에는 접시에 쌓일 틈도 없이 나랑 다혜, 오빠가 먹어치우기 바빴다. 음. 생각해보니 과자를 안 사도 될 만큼 감자튀김도 맛있었으므로 나와 다혜는 엄마의 말에 동의하고 음료수를 집으러 뛰어갔다. 감자튀김을 어떻게 싸준다는 건지 잠깐 궁금했지만 그 당시 운동 음료라기보다는 빛깔 고운 음료에 지나지 않았던 파워에이드를 집느라 금방 잊어 버렸다.     

 

 다음 날 고소한 밥 냄새에 깨서 부엌에 나가보니 엄마가 도시락 통에 가지런히 김밥을 담고 있었다.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식탁 의자에 앉아서 구석에 남은 햄과 계란을 집어 먹었다. 그리곤 가장 단단하게 싸진 김밥을 골라서 그 중에서도 터지지 않고 예쁘게 썰어진 김밥을 도시락 통에 담는 엄마를 구경했다. 그 옆에는 이미 우리 가족이 아침으로 먹을 김밥도 다 말아져 있었다. 나는 김밥을 입에 하나 넣고 어제 밤 미리 수첩과 연필과 휴지를 챙겨놓은 가방을 들고 왔다. 비워놓은 공간에 도시락을 넣으니 딱 들어맞았다. 음료수도 얼른 넣고 싶었지만 냉장고에서 최대한 늦게 빼야 소풍에 가서도 차가운 음료수를 마실 수 있으니까 꾹 참았다.

 

적당히 배부를 때까지 접시에 쌓아놓은 김밥을 집어 먹다가 드디어 갈 시간이 되어 음료수를 넣으려는데 엄마가 나와 다혜 앞에 짜잔 하고 뭔가 내밀었다. 에이포 용지 반만한 크기의 흰색 종이봉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흰색 종이봉투로 포장된 엄마표 감자튀김이었다. 아침부터 튀긴 감자를 어디에 넣을지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종이봉투였나 보다. 락앤락 보다는 패스트푸드점 기분을 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엄마는 집에 있는 종이를 접어서 붙여서 감자튀김을 담아 짠 하고 내민 것이었다. 나와 다혜는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결혼하기 전 유치원 교사를 했던 엄마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왕년의 솜씨를 발휘해 아기자기한 것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글자 끝에 구름같은 모양을 그려서 멋을 낸 편지나 대충 싸지 않은 도시락과 종이봉투에는 그런 엄마의 기분이 들어있었다. 그 기분을 전해받은 우리도 소풍가는 기분이 배로 났다. 오늘 만큼은 어느 집의 누구보다도 그 기분을 물씬 느낄 것이라는 자신이 들었다. 나와 다혜는 막 웃으며 신나게 집을 나섰다. 든든한 가방 안에는 따끈한 감자튀김이 도시락 위에 살포시 얹혀있었다.         

 

 운동장에 가서는 다혜와 헤어져 우리 반 줄에 섰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앞 사람 보고 똑바로 서라고 잔소리해도 친구들과 너는 밥 뭐 싸왔냐, 과자는 뭐 사왔냐 떠들다 보면 두 줄은 자꾸 세 줄이 되고 네 줄이 되었다. 늦게늦게 온 친구들까지 겨우 다 모이고 버스를 탈 때까지 나는 아무에게도 감자튀김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다. 아침에 엄마가 해줬던 것처럼 밥 먹을 때가 되면 나도 친구들 앞에 짠하고 내밀 생각이었다. 엄마가 직접 튀겨서 담아줬다고 자랑도 하면서 말이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 때도 지퍼 사이로 느껴지는 따뜻함과 고소한 냄새에 입 꼬리를 씰룩거렸다.     

 

 초등학교 일 학년의 소풍은 뭐 거창할 게 없었다. 근처 평탄한 산을 오르다가 선생님들이 점찍어 놓은 널찍한 자리가 나왔을 때 싸온 도시락을 먹으면 되었다. 일 학년 전체가 다같이 먹을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건지, 우리들의 걸음이 너무 종종거렸던 탓인지 생각보다 꽤 오래 올라간 끝에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 흙바닥에 돗자리를 까는 동안 나는 담임선생님께 가서 초록매실 유리병을 수줍게 건넸다.

“엄마가 이거 선생님 드리래요.”

그때는 담임선생님 음료수는 반장이 챙기는 거였다. 도시락까지 챙겨드리는 반장도 있었는데 다행히 담임선생님은 소풍 전 날 나를 불러서 도시락을 챙겨올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아이고. 고마워~ 잘 마실게.”

그 후로도 몇 번, 몇 년의 경험으로 초록매실은 선생님께 드리기에 거의 실패하는 법이 없는 안전한 음료로 인정받았다. 가장 좋아했던 사 학년 때 담임선생님께도 나는 초록매실을 건넸다.

 

 어쨌든 첫 소풍에서 반장의 임무를 다한 나는 친구들이 모여 앉은 돗자리로 폴짝폴짝 뛰어갔다. 친구들은 이미 도시락을 다 꺼내 먹으려던 참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도시락을 다같이 나눠 먹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얼른 싸온 것 좀 꺼내보라며 친구들이 나를 재촉했다.

 나야말로 얼른 꺼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자신감 넘치게 좌악 가방 지퍼를 열었는데 가방 안의 분위기가 아침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아까 버스에 탈 때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가방에서 눅눅한 기운이 느껴졌다. 감자튀김이 담긴 종이봉투가 안에서 새어나온 기름 때문에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산을 오르며 흔들린 탓인지 구겨지기까지 한 종이봉투는 힘 없이 축 늘어져서 괜히 남루하고 꾀죄죄해 보였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감자튀김 봉투를 제끼고 아래에 있는 도시락만 꺼내 내려놓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나무 젓가락을 뜯어서 싸온 게 이뿐인양 김밥을 먹었다. 먹는 내내 이제라도 감자튀김을 내놓을까 말까 고민에 휩싸였다. 혹시나 싶어 먹다말고 가방에 손을 넣어 감자튀김을 만져 보기도 했다. 다 식은 감자튀김은 바삭함을 대체할 따스함까지 잃어버려서 당최 내세울 게 없어 보였다. 나와 다혜와 오빠가 접시에 쌓일 틈도 없이 먹어치우던 감자튀김과는 모양새도, 느낌도 달랐다. 직접 튀겼다는 사실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 되어버린지 오래인 그것을 나는 친구들 앞에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먹지 않을 까봐서가 아니라 딱 하나씩만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름에 쩔은 종이봉투를 더 구겨서 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도시락을 먹고 나서 슬슬 과자를 꺼내기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난 이번에 과자를 안 가져왔다고 말했다. 과자를 나눠줄 친구들은 많았지만 딱히 먹고싶은 기분이 아니어서 이것저것 하나씩만 집어 먹었다. 감자튀김은 이따 혼자 다 먹으면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소풍은 별거 없는 일정이었지만, 그 별거 없는 일정이 재밌는 이유는 내내 친구들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돗자리를 접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놀고 우리가 늘어놓은 쓰레기와 산에 있는 쓰레기를 돌아다니며 줍기까지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가방 안에서 더 볼품없이 식어갈 감자튀김이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이 났다. 백 프로 진심을 다해 웃거나 뛰거나 줍거나 떠들기가 어려웠다.      

 버스에 탔다고 개인 시간이 보장될 리는 없었다. 옆에 바싹 붙어 앉은 짝꿍이 생기니 더 골치가 아팠다. 올 때 탔던 버스에서는 너무 재밌고 좋았던 친구가 왜이리 얄밉고 눈치없어 보이는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거 우리 엄마가 직접 만든 건데 먹을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이라면 누가 먹든 말든 내가 맛있고 좋으면 됐지 하고 꺼내 먹겠지만 그러기에 여덟 살은 수줍은 것도 신경 쓸 것도 너무 많은 나이였다. 보이지 않는 정성이나 마음, 사랑 같은 것보다 보이는 영역이 중요한 나이, 설사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낀다 해도 그것을 자랑할 줄 모르는 나이기도 했다.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아무리 손을 꼼지락 거려 봐도 친구들 몰래 감자튀김을 하나씩 꺼내 먹기는 무리였다.


 소풍날 버스 창문만 애타게 쳐다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내가 아는 학교 주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더 이상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 내리면 곧바로 다혜를 만나 집에 갈 것이었다. 다혜에겐 비밀 없이 모든 걸 말하지만 감자튀김을 꺼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정도의 미안함과 창피함과 어쩔 줄 모르겠는 죄책감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문제의 감자튀김을 친구들이 다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자 몇 초만에 털어먹거나 아니면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얼마나 감자를 자르고 튀긴 건지.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그랬는지 한 가득인 감자튀김을 쥐고 있다가 버스 창가와 의자 사이에 밀어 넣고 나는 후다닥 내렸다. 이따 먹으려고 종이봉투 입구를 꼭꼭 싸놓은 그대로였다.    


 이 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감자튀김을 꺼내 놓을 거라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혼자라도 먹었을 거라고, 아니 집에 가지고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절대 절대 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말하면서도 어찌나 엄마한테 미안하고 그때의 내가 후회스럽던지,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버스 사이에 끼워놓은 감자튀김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저릿하다고 세상만사 슬픈 얼굴로 말하고 훌쩍이고 있는데 바로 옆에 앉은 단 언니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 마디 던졌다.

“아니, 이게 가장 되돌리고 싶은 일이야? 도대체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엄마한테 이게 제일 미안한 일인 거야?”     


 물론 되돌리고 싶은 일이야 많다. 뻔하더라도 학창시절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고, 전과목을 착실히 공부하는 초등학생 이다은에게 국영수만 겁나게 파라고 얘기해주고도 싶고... 생각하면 끝이 없다. 생각을 깊게 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날의 일일 뿐이다. 엄마에게 가진 죄책감은 그 누구에게 가진 죄책감보다도 이상하게 깊고 치명적이다.


 며칠 전에도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대화를 나누는데 엄마가 여러 걱정과 잔소리와 신념을 일장 연설했다. 엄마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반박하기 시작하면 말도 길어지고 투닥거리겠다 싶어서 가만 듣다가, 나중에는 거의 대답도 잘 안했다. 엄마는 말하다 말고 애가 안 듣는다 싶었는지 “다은아! 다은아! 너 듣고 있어?” 하고 소리치는데 순간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와서 “아 알겠다고.”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해버렸다. 평소 듣지 못하던 투의 대답이라 엄마도 조금 멋쩍어졌는지 점심 잘 챙겨먹으라며, 맛있는 거 사먹게 돈 좀 보내줄까?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핑 도는 걸 참았다. 아빠는 바쁘고 집에 티비를 없애서 엄마가 심심하게 지낼 것도 알고, 장 보러 갈 때도 약 사러 갈 때도 혼자 다니는 걸 생각하면 늘 안쓰럽다. 더 자주 전화를 걸어도 모자랄 판에 무뚝뚝하게 구는 내가 참 별로였다.

 익숙한 죄책감이 들어 그 날은 카페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음료를 만들다가도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나중에 다혜나 정에게 엄마와 했던 통화 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냥 엄마라는 말만 해도 눈물이 났다. 정은 이렇게 미안해 할 거면 엄마에게 전화를 하거나 오랜만에 뵈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난 다음에 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으로 미루다 결국은 엄마가 먼저 오고 마는 비슷한 패턴이 또 반복될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자꾸 쓰면서도 죄책감은 사라지긴 커녕 더 쌓여만 간다. 감자튀김을 떠올리며 십년이 넘도록 미안해하는 게 과연 내가 착해서일까? 엄마에게 잘못한 게 없어서일까?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묻는 질문에 소풍날의 감자튀김이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는 그게 내가 가진 가장 착한 죄책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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