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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Apr 21. 2020

콘푸라이트

내일도 먹을 예정. 시리얼 계의 ‘베이직 이스 더 베스트.'

 익은 벼를 연상시키는 황금빛 색채, 울룩불룩 지루하지 않은 다채로운 모양, 샥샥샥 손쉽고 빠르게 쌓이는 가벼운 몸체, 젖는 순간 풍만해지는 깊은 고소함까지.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이 많은 장점이 있는 놀라운 식품을 마주한다. 시리얼 계의 ‘베이직 이스 더 베스트’. 콘푸라이트와 나는 십 년 넘게 동거 중이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우유를 물 마시듯 마시는 초딩 세 명이 살았더랬다. 백오십과 백육십 대의 키를 자랑하는 엄마와 아빠는 자식들에게 작은 키를 유전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요즘에야 키 크는 약이 흔한 세상이지만, 우리가 태어날 때만 해도 '키 크려면 우유를 먹여라! 칼슘이 답이다!' 같은 말이 방송에 많이 나올 때였고 그 말은 내 부모의 머리와 가슴에 남았다. 아주 초창기부터 뼈대를 잡고 싶었는지 엄마는 갓난아기인 나와 다혜를 먹일 분유에 멸치를 갈아 넣기도 했단다. 아기에게 그 간이 센 걸 갈아 먹였다며 자기가 몰라도 한참 몰랐다고 다 큰 우리에게 엄마는 얘기하곤 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초등학생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우유를 사서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 그 덕분에 냉장고 음료 칸에는 항상 커다란 1.8L 우유가 몇 병이나 있었고 오빠와 나와 다혜는 목이 말라도 매운 걸 먹어도 배가 고파도 우유를 마시는 아이들로 무럭무럭 자랐다.


 초등학교 이 학년 때 하루는 같은 단지 맞은편 동에 사는 강이의 집에 놀러 갔다. 둘이서 한창 엄마놀이와 쇼핑놀이를 하며 떠들었더니 목이 말랐다. 흰 빛깔로 찰랑거리는 차가운 우유가 마시고 싶었다. 목이 마른데 마실 것 좀 줄 수 있냐고 하자 강이는 기다려보라며 식탁에 세워둔 물병에서 물을 따라주려고 했다. 나는 물 말고 우유를 줄 순 없겠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강이는 우유?하고 묻더니 냉장고를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아마 없을 텐데.. 중얼거리며 확신 없이 냉장고 문을 여는 강이를 보며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냉장고에 우유가 없다고? ‘아마’ 없을 거라는 말은 사둔 게 조금 남았거나 다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아니라 평소에 우유라는 것이 냉장고에 있던가 하는 느낌이었다. 강이 뒤에서 같이 냉장고 안을 빠르게 훑었으나 우유가 보이지 않았다. 1.8L는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하얗게 빛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이 정도 훑었는데도 안 보이다니. 진짜 이 집에는 우유가 없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모든 집이 우리 가족처럼 우유를 퍼마시는 줄 알았던 나는 진심으로 놀라면서도 강이네 가족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나보다 더 쬐끄만 강이의 뒷모습을 보며 대체 얘는 무슨 태평함으로 우유를 이렇게 안 먹나 싶었다. 

한참 걱정에 빠져 있는데 강이가 찾았다며 소리를 질렀다. 역시. 우유가 없는 집이 어딨냐! 말하는 나에게 강이는 손바닥만 한 200mL 곽 우유를 내밀었다. 같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아침마다 배급해주는 것이었다. 먹기 싫은 걸 집에 가져와놓길 잘했다고 웃는 강이 앞에서 입도 떼지 않고 몇 초 만에 우유갑을 비웠다. 얼른 집에 가서 커다란 우유를 꺼내 가지고 몇 번이고 컵에 따라 마시고 싶었다.


 한 사람 당 하루에 1L씩도 마시는 우리 집의 특별함과 소중함을 깨달아가며 우리 삼 남매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지나 중학교에 입학했다. 마구 뛰어노는 시간이 줄어드니 목이 엄청나게 마른 순간도 자연히 줄어들고, 그 목마름마저 흰 우유보다 맛있는 초코 딸기 우유나 탄산음료가 채워주는 때가 많아졌다. 중학생 때까지는 성장판이 닫히지 않을 거라 믿은 엄마 아빠의 우유 사랑은 계속되었지만 오빠와 나와 다혜는 조금씩 우유로 강력한 유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나와 다혜의 키가 백육십을 찍어 놓은 상태라 긴장이 풀어진 탓도 있었다. 

우유가 냉장고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는 특단의 조치로 마트에서 콘푸라이트를 사 왔다. 코코볼이나 첵스는 담가놓으면 흰 우유를 아예 초코우유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흰 우유의 모양과 영양분을 최대한 해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적당한 단 맛과 씹는 맛을 선사하는 콘푸라이트야말로 우유를 조금이라도 더 먹여보려는 엄마의 의도에 합격할 수 있는 시리얼이었다.

 

 싱싱하고도 단조로운 흰 우유에 말은 콘푸라이트는 얄쌍한 몸으로도 큰 파급력을 발휘하여 우리 집 우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다시금 수요와 공급이 재빨리 이루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우유를 갓 부은 콘푸라이트는 아주 달고 바삭바삭해 과자를 먹는 기분이고, 점차 눅눅해진 콘푸라이트를 달달해진 우유와 함께 들이키는 건 또 환상적으로 꼽꼽한 매력이 있었다. 주로 오빠는 후다닥 그릇을 비워내는 바삭 파였고, 나와 다혜는 컵라면처럼 몇 분을 기다렸다 먹는 눅눅 파였다. 오빠는 그런 우리를 할머니 같다며 놀렸다.


 우리는 아침 식사로도, 하교 후 간식으로도, 가끔은 저녁을 먹고 입가심으로도 콘푸라이트를 타 먹었다. 배가 부르면 먹고 또 먹을 수가 없으니까 우유 양을 줄였다. 그릇에 콘푸라이트를 잔뜩 쏟고 나서 우유를 자작하게 따라먹는 식이었다. 우유가 빠르게 사라지는 현상은 흡족했으나 그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는 시리얼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엄마는 우리가 콘푸라이트를 말아먹을 때마다 옆에서 강조했다. “콘푸라이트는 쪼끔!!! 우유는 많이!!! 콘푸라이트는 그냥 재미로 건져 먹고 우유를 들이키란 말이야~”


 콘푸라이트를 조금만 만다는 것은 우유가 충분히 달달해지지 않고, 씹을 거리가 적어진다는 면에서 바삭 파와 눅눅 파 할 것 없이 받아들이기 힘든 권면이었다. 그렇지만 먹는 우리가 보기에도 콘푸라이트는 너무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엄마는 우유를 살 때는 쿨한 데다 화끈했지만 아무래도 우유 가격에 두 세배쯤 되는 시리얼 앞에서는 더 오래 고민했을 것이었다. 엄마가 보는 앞에서 조금씩 줄여나가던 콘푸라이트를 우리끼리만 있을 때도 알아서 절제할 수 있는 양심이 다행히 조금씩은 있었다. 가끔 나는 이만큼이나 아껴 먹는데 완전 팍팍 말아먹는 오빠를 보면 승질이 나서 “조금만 말아먹어!”라고 소리쳤는데 오빠가 “나는 한 번 먹고 너는 여러 번 먹잖아. 그만 좀 먹어라.”하고 말하면 할 말은 없었다. 그래서 더 조용히 한 번 더 말아먹었다.


 바쁘게 공부하고 놀았던 고등학생 시절까지도 콘푸라이트를 향한 애정은 계속되었다. 어렸을 때보다는 수요가 줄은 덕분에 엄마는 가끔 첵스나 오레오, 코코볼 등을 공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짱은 콘푸라이트였다. 몇 년간의 꾸준한 훈련으로 우유를 잔뜩 붓고 콘푸라이트를 조금 타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우유와 콘푸라이트를 7:3으로 설렁설렁 말아먹는 게 더 좋기는 무슨, 6:4나 5:5가 가능해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그건 당장이라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뭐랄까. 바쁜 현대인의 느낌을 풍기며 더 떳떳하게 말아먹고 싶은 마음이랄까. 엄마가 사다 주는 시리얼과 우유로 누리고 싶지 않은 일종의... 성공?... 어른스러움?


 하루 삼시 세 끼를 혼자 차리고 먹고 치우는 스물여섯의 독립인이 된 나는 실로 엄청난 성공을 누리고 있다. 코스트코에서 세 묶음 짜리 콘푸라이트를 사 가지고 하루 죙일 콘푸라이트를 말아먹는 어른이 된 것이다. 그릇에 넘치도록 우유를 붓는 촌스러운 짓은 물론 하지 않는다. 아주 자작거리게 부은 후 숟가락 한 가득 콘푸라이트를 떠서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또 말아먹으면 되니 바삭하든 눅눅하든 상관이 없다. 나와 다혜는 한 그릇을 말 때부터 약속한 듯이 말한다. “먹고 더 먹어~” 그 농담이자 진담은 실패한 적 없이 너무 웃겨서 매일 서로를 보고 키득대며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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