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하나, 그림 하나.

미니멀리스트의 조그만 변화

by 캐롤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나서는데, 정년이 가까운 어르신이 부르셨다.

"내가 저 4층에 화분들을 좀 가져다 놨는데,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요. 사람들이 지저분하다고 들고 갈런가 몰라. 구경이나 가 봐요."


평소에 회사 여기저기에 화분을 두고 키우시긴 했는데, 이번에 싹 정리를 하실 모양이었다.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가보았더니, 난부터 다육 식물들, 이름 모를 초록이들이 가득했다. 막상 보니 예쁜 것도 꽤 있었고, 견물생심이라고 욕심이 나기도 했다. 다른 동료는 집에 모기가 많다고 구문초를 챙겼고, 새집 인테리어 할 때 넣을 거라고 미니 몬스테라도 챙겼다. 나도 친정 엄마에게 드리려고 그중 상태가 괜찮은 화분 몇 개를 챙겨 집으로 가져왔다.

"화분이 있으니, 거실이 좀 다르긴 하다. 갑자기 웬 화분이야?"

남편이 여기저기 놓인 화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엄마 오면 드릴 거야. 누가 주셨어."

엄마는 아파트 베란다 한편을 화분들로 채워 가꾸셨다.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듯 보이는데, 화분은 하나둘 씩 늘어 이젠 몇 개인지 세기도 어렵다. 우리를 키우는 일에서 벗어난 엄마가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갖고 한가롭게 가꾸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가끔 허브나 다육 화분을 사다 드리기도 했다. 엄마는 식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거둬 가꾸셨다. 풀 한 포기, 이파리 하나에도 화분을 만들어 주셨다.


결혼 전 충동적으로 고무나무를 구매한 적이 있다. 너무 삭막한 작은 방에서 숨이 막혀 버릴 것 같던 저녁, 근처 꽃집에 가서 거금 7만 원이나 주고 구입한 것이다. 당연히 환기도 제대로 하지 않고, 빛도 들지 않던 원룸에서 고무나무 잎은 하나둘씩 떨어졌다. 나중에는 이파리가 하나도 남지 않아 꼴사나운 모양으로 엄마 집으로 옮겨졌다. 엄마는 아무 잎이 나지 않는 고무나무를 1년이나 지켜봐 주셨다. 7년이 지난 지금, 나무는 대견하게도 내 키에 가깝게 자란 데다 새끼 나무도 하나 만들어냈다. 엄마가 가끔 다시 돌려주시겠다고 하지만, 처음에 내가 죽였던 탓인지 수형이 비뚤어져서 나무가 참 못났다. 다시 집에 들일 마음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나무는 나무지, 하면서 못난 생김에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으신다. 마냥 새 잎을 낸 나무를 대견히 여길 따름이시다.

집에 온 엄마에게 화분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가실 때 챙겨가시라고 말씀드렸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화분도 꽤 고급스럽고, 잎들도 싱싱한 편이라 엄마가 반색하며 가져가실 줄 알았다. 화분을 살펴보던 엄마는 되려 내게 화분을 집에 두고 키워보라고 하셨다.


"왜, 엄마? 마음에 들지 않아요?"

식물을 키울 생각이 전혀 없던 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아이를 키울 때는 화분이 좀 있으면 좋아."

엄마의 뒷이야기는 이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아이 둘을 키우던 엄마는 꽤 깔끔하게 집을 정돈하시던 분이셨다. 어느 날, 엄마는 직장 동료를 집에 불러 식사를 하셨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집안을 둘러보시고 그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근데, 이 집엔 화분이 하나도 없네요?"

엄마에게 그 말은 너무 생경했다고 한다. 우리집에 화분이 없었나? 집에 화분이 있어야 하나? 다른 집엔 다 화분이 있나? 그 전까진 집에 화분이 없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화분을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거나, 식물을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화분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후 다른 집에 방문할 때면 이 집엔 화분이 있나, 둘러보곤 했다고도 하셨다. 조금이라도 여유(물질적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가 있는 집엔 화분이나, 그림이 꼭 있더라고. 엄마에겐 그땐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고. 가능하다면 너는 그런 여유 정도는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엄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화분 하나 키울 여유가 없던 그 시절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 시절을 전쟁치르듯 살았다고 표현해왔다. 남편과 둘이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허덕댈 때면 가끔 그 시절의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엄만 참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우리 둘을 잘 키웠으니까. 엄마는 최선을 다 한 거라고 말씀드렸다. 화분이 없다고 우리가 삭막하게 자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화분이 없다고 그리 말하는 사람이 어딧냐고, 화분 없는 집이 얼마나 많냐고도 말했다. 진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엄마의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드리고 싶었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집 안을 살펴보았다.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한다고 한 지 5년이 넘었다. 아이를 키우니 모든 것이 내 맘 같지는 않지만 노력한 만큼은 단정해진 집이라고 생각했다. 방마다 필요한 가구와 물건 외엔 장식을 위한 요소는 전혀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집을 다시 돌아본다.

가족의 삶이 존재하는 공간을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꾸리는 미니멀리즘이 정답일까? 다시 고민을 해보게 된다. 나의 미니멀리즘에, 나의 삶에, 공간에 빠져있는 건 무엇일까? 화분이나 그림은 미니멀한 삶에 불필요한 것일까? 그림이나 화분이라도 몇 가지가 있는 게 정서상 더 나은 건 아닐까?


밤에 소파에 기대 누워 휴대전화를 들고, 이런저런 그림들을 골라봤다. 집에 인테리어로 둘만한 따뜻한 그림이 몇 마음에 든다. 액자까지 해놓으려면 꽤 돈이 들긴 할 테지만, 해보고 싶어졌다. 미니멀리즘으로 휑하게 비어낸 벽에 그림 하나 걸려있는 모습도 꽤 보기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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