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왜 아기가 있지?(4)

4. 나는 마스크를 끼고 휠체어를 타는 엄마입니다.

by 김나율

임신 35주, 나는 양쪽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깁스를 한 막달 임산부였다. 집에 돌아와 보니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도, 밥을 차릴 수도, 씻을 수도 없었다. 가족들과 상의 끝에 결국 정형외과에 입원하기로 결정을 하고 짐을 쌌다. 다행히 병원 체질인 나는 병원 밥도 맛있고,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돼서 편하고,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발목이 아프다는 것만 제외하면 정말 좋았다.


하지만 발목이 아프다는, 그것도 양쪽 발목이 아프다는 것은 임신으로 연약해진 내 정신건강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인대 파열은 시간이 약이라 하는데, 평상시에 비해 몸무게가 10킬로가량 증가된 상태에서 인대가 늘어날 대로 늘어난 임산부가 아무런 약물치료를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영영 못 걷는 건 아닐까?’


어쩌다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에 가면서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드는 생각은 밤새 나를 괴롭혔고, 산전우울증과는 또 다른 공포와 불안이었다. 그러던 중 막달 검사를 해야 했기에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갔다. 나는 8개월까지 일반 산부인과에 다니다 혈액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혈액형이 rh-이다 보니 아무래도 일반 산모보다는 혈액을 구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심지어 막달 검사에서 나온 결과는 더 충격이었다.


“rh-ab형인데, 비정형 항체를 가지고 있고, 쿰스 검사까지 하셔야겠는데요?”


난생처음 듣는 단어에 우리 가족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결론은 특이한 혈액형 중에서도 특이하고, 같은 혈액형이라도 수혈을 못 받을 수 있으니 나와 딱 맞아떨어지는 혈액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목도 부상을 입어서 아무래도 자연분만은 어려우실 것 같아요. 아기가 예정보다 한 달 정도 커서 이대로 기다렸다간 5kg에 육박하게 나올 거예요. 그러면 산모도 아기도 위험해요. 이번 주에 수술하시죠. 언제 하시겠어요?”


두둥-


의사가 혈액형 이야기를 할 때보다 우리 가족은 더 당황했다. 아직 정형외과 입원 중이고, 당장 이번 주에 수술을 하자니? 아기가 한 달 정도 큰 것은 이미 임신 초기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 달을 당겨서 출산을 해도 되는 건가? 몸무게만 많이 나갈 뿐 배 안에서 충분히 자라지 못했으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이 우리를 집어삼켰고, 우리는 3일 동안 고심 끝에 예정일 2주 전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일주일 간의 정형외과 입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주일간 출산 가방을 쌌다. 졸지에 제왕절개를 하게 되어 4박 5일 병원 짐에 조리원 2주 짐까지 하니 거의 한 달치의 짐을 싸게 됐다. 혹시 몰라 8개월 때부터 출산 가방 리스트를 준비하고 차곡차곡 준비해온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출산 전 날. 남은 병실에 2인실 뿐이라 남편과 나는 부푼 마음과 걱정을 안고, 병실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옆자리에도 당연히 산모가 있을 거라는 예상으로. 하지만 이내 병실에 들어온 환자는 50대 여성이었다. 남편과 나는 의아한 눈빛을 주고받았고, 환자와 보호자의 대화 내용을 듣고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난소암 4기 판정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계신 암환자셨다.


남편과 나는 내일이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창이를 만나는 날이었는데,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기쁨도, 설렘도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옆자리에 계시던 분들도 우리가 편치는 않으셨을 것이다. 옆에는 산모라 생명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을 텐데 하루 종일 암, 항암, 상조 이야기를 하고 계시기 불편하셨을 것이다. 결국 서로의 마음 편한 수술을 위해 나는 병실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1인실로 옮길 수 있었다.


출산 당일.


“산모님, 제모하러 가실게요.”


아니, 잘못들은 줄 알았다.


“저 제왕절개인데요?”

“대학병원에서는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다 제모해요.”


이럴 수가. 제왕절개는 제모를 하지 않는다는 정보에 안도하고 왁싱에 대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이 때는 정말 몰랐다. 출산 전 제모를 하기 위해 왁싱샵을 꼭 가야 한다는 사실을. 훗배앓이보다 제모로 인한 상처가 더 아프다.)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듯 강제로 제모를 당하고 나를 태운 침대는 수술실로 향했다.


“잘하고 와.”


수술실.

의학드라마에서나 보던 동그랗고 환한 불빛, 초록색 수술복, 알 수 없는 용어들. 나는 수술대에 누워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하반신 마취할게요. 잠시 돌아누워보시겠어요?”


내 예상과 달리 수술실 안 사람들은 전부 친절했다. 하반신 마취를 하기 위해 새우 자세로 허리를 구부려보라 했고, 인터넷이나 주변에서는 마취하는 순간이 제일 아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워낙 발목에 통증이 심해서 바늘이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레지던트가 담당 의사를 부르는 듯한 통화소리가 끝나고 몇 분 후 담당의사가 들어왔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와. 9달 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하고 고대해왔던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반신 마취를 하면 정말 안 아플까? 칼로 배를 가르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나는 혼자 또 궁금증을 뭉개 뭉개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기가 너무 커, 더 찢어. 더. 더.”


수술실 적막을 깨고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아기 머리가 끼었나?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와중에 배 위에 올려놓았던 바위를 누가 훅- 하고 들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아기는 나온 것 같은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몇 초 후


“으앙으앙으앙!”


화창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태어나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기를 낳은 산모가 왜 우는지 궁금했는데, 아기가 무사히 나왔다는 안도감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아기와 의사, 간호사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간호사가 화창이의 몸에 뭍은 피를 닦고 천으로 감싼 후 울고 있는 내 옆에 섰다.


“귀여워.”


화창이를 본 나의 첫마디였다.


“수면 마취해드릴게요. 고생하셨어요.”


허리에 마취주사를 놔주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침대에 눕혀진 나는 또 어디론가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고생했어. 아기 정말 예쁘더라.”


내 머리를 쓰다듬는 남편.

그리고 또다시 눈을 떠보니 병실 천장이 보였다.


“정말 대견해, 내 딸. 사랑해.”


남편과 교대한 엄마.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온 가족과 지인의 축복으로 병실이 시끌벅적 했겠지만 보호자를 1인으로 한정하는 바람에 1명씩 돌아가며 나를 격려해주고 축하해주러 병실에 들어왔다. 출산 당일 밤까지 마취가 덜 풀려서 많이 아프지 않았고, 아기를 볼 수 없다 해서 거의 잠만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양 쪽 발목에 깁스를 한 채, 배를 움켜쥐고 1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십여 분간 걸어갔다. 그리고 만난 화창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수유실에 들어가 화창이를 안고, 인사했다.




“안녕, 내가 너의 엄마야. 많이 보고 싶었어. 아기를 만나면 안 아프다더니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네. 네가 내 치료약이구나.”


화창이를 만나자 지난 임신기간 동안 내내 궁금했던 한 가지의 대한 답을 알아냈다. 나는 여자이면서 아내이자, 너의 엄마구나. 어쩌면 너의 엄마가 되려고 태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여자에서 임산부를 거쳐 엄마가 되었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아는 건 그저 성교육 시간에 배운 생물학적으로 ‘엄마’가 되는 과정뿐. 하지만 임산부의 삶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고, 마냥 행복하지만도 않았다. 멀리서 볼 때는 ‘임산부라 힘들지만 행복하겠다.’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내실은 정말 겪어본 사람만 안다. 임신을 했을 당시에는 10개월이 너무나 긴 시간이라 여겨졌지만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고, ‘엄마’라는 존재로 태어나기까지는 생각보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혼돈 같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롯이 나에게 의존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아기 덕분에 더더욱 혼란스러운 시간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런 ‘멘붕’의 시간을 ‘견디고, 버틴다’는 단어로 우리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롭기까지 한 시간을 억지로 흘려보낸다. 부디 앞으로 이 땅에 생명을 탄생시킬 예비 엄마들은 나와 같은 시련의 시간을 갖지 않기를, 나와 같은 우울감에 젖어들지 않기를,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익혀서 10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엄마’로 태어날 준비를 철저히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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