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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Jun 09. 2022

말하고 싶은 비밀

우리 가족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한 때는 자랑스러웠지만 지금은 어쩐지 숨겨야 할 것만 같은 비밀. 그것은 바로 25개월인 아들이 아직도 모유수유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루에 몇 번 간식처럼 먹는다. 주변에서 아니, 당장 가족들만 해도 모유수유를 오래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특히 친정엄마는 손자 걱정부터 내 걱정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단유 소식을 안부처럼 묻곤 하셨다. 지인들도 그렇게 오래 수유하면 가슴이 아프지 않냐며 걱정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걱정들은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고 나는 더 이상 가족 이외에 사람들에게 내가 수유부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병원에서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6개월 동안 등원만 했다 하면 감기에 걸려와 매주 소아과에 다녀야 했다. 의사들도 돌이 지난 아이에게 모유수유에 대해 묻지 않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들에게 옮아 감기에 걸려 약을 처방받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수유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제가 지금 수유중이라...”

“네? 잠시만요, 다누가 지금 18개월인데 아직도 수유하신다고요?”

“네.. 아직 단유를 못했어요...”     

돌 전에는 ‘저 수유중입니다!’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당당한 수유부는 어디 가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부끄럽다는 듯 목소리가 작아졌다. 단유도 못하는 무능력한 엄마라는 눈빛, 엄마가 저렇게 단호하지 못해서 애 교육은 어떻게 시키냐는 듯한 말투. 단유를 못했다는 사실은 엄마의 직무유기라는 식의 말들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머니, 모유는 생후 6개월까지만 먹여도 돼요. 그 이후에는 먹이나 마나라고요. 이렇게 오래 수유하시면 구강기가 오래 지속되게 되고, 나중에는 자기 조절력에도 문제가 생겨요. 올해 안에 꼭 단유하세요.”     

우리 가족이 평소 믿고 따르던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나는 갈등에 빠졌다.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고 불안이 심한 아이에게 안정을 찾아주고자 했던 일들이 자기 조절력에 문제를 끼친다니. 육아관이 흔들렸다. 그날 이후, 머리로는 단유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마음은 아직도 수유하는 아이의 표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아들 때문에 단유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수유만 하면 신생아실에서 만났던 화창이(아들의 태명)이를 만날 수 있었다. 육아가 고되고 지쳐도 하루에 두세 번 만나는 화창이는 나를 치유하고 위로했다. 아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수유를 하는 시간이 오면 ‘내게 와준 천사’인 화창이가 ‘엄마, 잊지 마! 나 그때 그 화창이야.’ 하며 말을 거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유수유는 나에게 수유와 애착형성 그 이상이었다. 어쩌면 더블고 하니인 다누를 밝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해 준 원천일지도 모른다.     

단유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자 오히려 단유를 포기할 것을 다짐했다. 이때가 아니면 평생 오지 않을 아들과 나만의 시간과 교감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늦은 수유의 단점도 많을 것이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만해도 단유를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젖몸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슴이 아픈 것도 아니고, 수유로 인해 아이와 엄마가 모두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36개월까지도 수유했다는 엄마들의 사례를 알고 나자 묘한 호기심도 생겼다. 언젠가는 단유를 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아들이 단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고, 엄마인 내가 마음의 준비가 끝났을 때일 것이다.

앞으로 누군가      

“아직도 모유수유를 한다고? 단유 해야지!”     

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전보다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하겠지. 그런데 지금만 누릴 수 있는 이 행복을 끊을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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