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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May 26. 2022

훈육은 부모에게 맡겨주세요

아들이 유모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부터 자주 가던 집 앞 빵집이 있다. 걸음마를 하는 시기에도 아들과 손을 잡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산책 삼아 그 빵집에 들렀다. “엄마, 다누 빵 줘.”라고 말을 할 정도로 성장한 지금의 아들에게도 그 빵집은 여전히 애정 어린 공간이다.

유모차에서 바라만 보던 빵들을 향해 달릴 수도 있고, 잡고 싶으면 잡을 수도 있는 아들에게 빵집은 천국이겠지만 비좁은 빵집에서 뛰어서도, 사지 않을 빵을 만져서도 안된다고 어려서부터 단단히 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성격상 가게 안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양손에 빵을 주물러야 직성이 풀릴 아이지만 아들은 자신이 먹고 싶은 빵 하나만 골라 나에게 가져오곤 했다.


그날도 아들이 평소 즐겨 먹던 뽀로로가 그려진 빵을 골라 나에게 가져오고 있었는데 빵집 사장님께서 나를 향해 외치셨다.


“어머니, 아기가 빵을 잡았어요!”


빵집 사장님은 아들이 유모차에 타고 있던 시기에만 뵙던 분이라 아들이 여느 아이들처럼 빵을 가지고 장난친다고 생각하셨나 싶어 간단히 대꾸하고 아들에게 빵을 받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휴대폰으로 결제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이번에는 우유 진열대 앞에서 우유를 골라 가져오고 있었다. 그러자 언짢은 표정을 한 사장님이

“아이가 우유를...”

하며 손가락으로 아들을 가리키고 계셨다. 나는 아들이 우유라도 떨어뜨렸나 싶어 놀란 마음으로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들은 그저 빵과 함께 먹을 우유를 고르고 있었고, 나는 아들에게 다가가 이야기했다.

“다누, 우유가 먹고 싶었구나. 초코우유가 먹고 싶어? 그런데 다누는 아직 초코우유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우유가 먹고 싶다면 흰 우유를 먹었으면 좋겠는데...”

라며 초코우유가 먹고 싶다는 아이를 설득하고 있던 찰나 계산대에서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들!! 우유 만지면 안 돼!!!”

가게 안에는 다른 손님들도 꽤 많았는데, 사장님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향해 소리치고 계셨다. 어안이 벙벙했다.

잘못한 것도 없이 공개적으로 혼이 난 아들을 다독여주기 위해 얼른 가게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계산을 마치자 사장님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아이가 만지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네.’라 대답하고 아들과 빵집을 나섰다.

기분 좋게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간 것이었는데 기분이 너무 나빠졌다. 아이가 없었다면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상대에게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사태를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빵집에서 나오자마자 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다누야, 아저씨가 다누에게 소리쳐서 많이 놀랬지? 다누는 잘못한 게 없는데 혼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안 좋았을 것 같아. 엄마도 기분이 안 좋았어. 아저씨가 다누 이것저것 만질까 봐 불안하셨나 봐.”


아들을 데리고 멍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최대한 잊으려고 노력했다. 직원이 아닌 사장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워낙 빵이든 우유든 만지작거리니 아이가 빵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했겠지. 다른 손님들 사이로 걸어 다니는 다누만 쳐다보고 있었겠지.


며칠 뒤 남편에게 그날의 일을 이야기했더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어갈 줄 알았던 남편의 입에서는 심한 욕이 나왔다.

“그걸 가만히 참고 그냥 나왔단 말이야? 아휴. 다누가 상처받지는 않았어? 부모인 나조차 아무리 애가 혼날 짓을 해도 그렇게 공개적으로 혼을 낸 적이 없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손님한테 소리를 질러?”

“그러게. 사람도 많았는데 자기가 먹을 우유를 고르고 있는 아이한테 그러면 안 되지. 그 사람은 다누가 장난칠 거라고 생각했나 봐.”

“그니까 그게 잘못된 거지! 예상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평소에 잘 흥분하지 않던 남편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주니 왠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앞으로 주의시키겠다고 대답까지 하고 나온 나 자신이 또 한심해졌다.


그래서 그냥 넘기기로 했던 그날의 일을 다시 곱씹으며 앞으로 누군가 아들에게 훈계하려는 상황이 닥쳤을 때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우선 훈육에 관한 육아서적들을 읽으며 나의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역시나. 훈육은 따끔하게 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알려주는 것이었다. 오은영 박사님도 천 번, 만 번이고 가르치는 것이 훈육이라 했고, ‘남자아이 맞춤 육아법’을 쓴 하라사카 이치로 소장도 구체적인 언어로 부드럽게 계속해서 알려주는 것이 훈육이라 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빵집 사장님이 우리 부모님 세대라 그저 훈육을 때리고 혼을 내서 말을 잘 듣게 하는 것이라고 알고 계신 것이 아닐까. 그러다 사장님이 나와 아들의 대화를 듣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봤을 때 내가 쩔쩔매는 상황으로 보였을 수 있겠다 싶었다(아니,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조곤조곤 말로 설명하는 것이 훈육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들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판단하고 나름대로 ‘호랑이 아저씨가 이 놈 한다!’를 시전 하신 게 아닐까. 사장님의 속이야 알 길이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노땡큐’다. 훈육은 엄연히 부모의 몫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하지만 훈육은 다른 개념이다. 부모가 아닌 타인의 개입은 오히려 아이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훈육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앞으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이렇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도와주시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 아이니까 제 방식대로 가르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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