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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May 13. 2022

언제나 정답은 문제 속에 있다

예민맘의 소심한 부탁

외투가 가벼워지면서 겨우내 집에만 있어 미안했던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매일 아들과 산책을 나갔다.

작년 봄에는 유모차에 탄 채 꽃구경을 다녔는데, 올해는 신발을 신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나무와 꽃, 작은 돌멩이에게도 인사하는 아들을 보니 새삼 코끝이 찡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놀이터로 향하는 아들 뒤를 따랐고, 놀이터에는 아들 또래의 아이들도 꽤 있었다. 아마 어린이집 하원을 하고 엄마와 함께 온 모양이었다.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아들보다 한 두 살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들을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왔다.      

“아기다! 귀여워.”     

여자아이는 대뜸 아들 볼을 쓰다듬었다. 양손 가득 아이의 짐을 들고 뒤따라오던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딸에게 아기는 눈으로만 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 차례 아들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더러운 손으로 아기를 만지면 안 된다, 눈으로만 봐야 한다, 아기 만지면 아야 한다 등등 수차례 아이에게 이야기했지만 어째서인지 아이는 자꾸만 우리에게 다가와 아들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낯가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평소 사람을 좋아하는 아들은 누나의 관심을 달갑게 받아주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서 저렇게 타이르고 있는데 내가 또 나서서 어떤 말을 하면 아이와 엄마가 상처받지 않을까?’     

단호한 미소를 지으며 안 되는 건 안된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평소에도 소심하고, 쭈뼛거리길 좋아하는 나는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금세 당차게 할 말을 하는 여자가 되지는 못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이의 손보다는 깨끗한 내 손으로 아들의 두 볼을 감싸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석고 비굴한 엄마였다.

놀이터에서 그 아이가 계속 따라다니는 바람에 아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항상 지나 놓고 생각하는 버릇은 언제 고쳐지려나 싶지만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동네에서 또다시 그 아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오늘처럼 아들에게 피해를 줄 게 뻔했다. 처음 생각해낸 대사는 아들에게 ‘누나한테 다누 아야 해~라고 이야기해야지’라고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지역맘카페에 의견을 물은 결과 안전과 위험에 대한 것은 돌려서 말하기보다 상대에게 분명하게 잘못을 직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상대에게 바른 소리 한번 못 해본 사람으로서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다. 출산 전 많은 육아서를 보며 자식을 지키기 위해 그깟 말 한마디 못할까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을 마주하니 말문이 막히고, 그저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내내 고민을 하다 문득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문장이 떠올랐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딸을 케어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름대로 올바른 문장으로 훈육하시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렇게 상대에게 직접 말하되, 엄마와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 만한 한 마디를 찾아냈다.      

“아기가 귀여워서 손으로 만지고 싶구나? 그래도 아기는 눈으로만 봐줄래? 손으로 만지면 아기가 아야 할 수 있어.”      

아이의 엄마가 이야기한 문장과 아주 흡사하고 내용은 같지만 나름 청유형에 그 이유까지 담아보았다. 어쩌면 정답은 항상 문제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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