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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꼬마신사숙녀 여러분

by 단미

동네 복지회관에서 클래식 공연이 열렸다. 연주단체는 인천시립교향악단으로, 정식 연주회가 아닌 지역 주민 복지를 위한 공연이라 교향악단보다는 작은 규모에 비발디 사계처럼 인기있으면서도 듣기 편한 곡 위주로 레파토리를 꾸민 한 시간 남짓한 무대였다. 한 시간 안에 테너와 비브라폰 연주자 협연까지 준비된 알찬 공연이어서 꽤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지역 복지회관에서 하는 공연에 처음 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평일 저녁 시간에 복지회관에서 열리는 공연 관람객은 지역 주민 모두가 대상이라는 것. 재미없는 클래식 공연에 설마 아이들이 오겠냐는 생각이었는데 이건 동네 공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의 착각이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티켓을 받고 나니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직접 고른 자리로 가서 책을 읽으며 연주 시간을 기다렸다. 조용하던 공연장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예닐곱살 아이 손을 잡고 온 어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온다. 설마 아이도 공연을 보러 온건가 싶어 더 둘러보니 걷지도 못하는 아기부터 유치원생, 초등학생까지 줄줄이 입장하고 있었다. 여기가 학예회장인가? 클래식 공연이라 지루할 게 뻔한데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면 어떡하지. 소란스러움이 예상되었고 불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보느니 그냥 가는게 낫지 않을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망설이던 중에 앞줄에 아이 셋을 자리에 앉히느라 분주한 젊은 어머니가 보였다. 가장 나이 많아보이는 아이가 기껏해야 초등학교 일학년일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모두 앉히고 나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공연보는 예절을 알려줄게”


갑자기 귀가 쫑긋했다.


“소리지르지 않는거야. 큰 소리로 말해도 안 돼. 말하고 싶으면 손 들고 있어. 엄마가 볼게.“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모습에 나의 망설임은 사라졌다. 이렇게 예절교육을 시킨다면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어도 이해할 수 있다며 나는 갑자기 너그러워졌다. 게다가 나의 섣부른 염려는 쓸데없었다는 게 곧 드러났다.


객석 불이 꺼지자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해졌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심히 박수를 쳤으며 연주를 감상하는 눈빛은 이보다 진지할 수 없었다. 심지어 대각선 앞쪽에 앉은 여자아이는 머리카락을 단정히 하나로 묶은 고개를 한 번도 돌리지 않고 무대만 바라보았다. 어린 관객들이 이토록 훌륭한 관람 태도를 보여주다니! 멋진 연주와 별개로 나는 또다른 감동을 받았다.


물론 그 많은 아이들이 한 자리에 있었음에도 공연장 분위기가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들의 숨은 노력이 한몫했다. 두세 살 아기는 끊임없이 어르고, 네다 섯살 된 아이는 종이와 색연필로 그림그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미리 준비를 해왔고,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작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는 어머니들....


아이들의 관람 태도는 성숙했고 어머니들의 교육은 바람직했다. 훌륭한 교육 현장이 바로 여기 있었다.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이 아이들이 자라난 우리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흐뭇해졌다. 오늘 이 공연이 아이들에게 그저 즐거운 공연을 본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공질서를 어떻게 지켜야하는지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을테고 이렇게 살아있는 교육은 오래 남을 것이기에.


더불어 요즘 아이들은 공공질서를 지킬 줄 모르다고 불평했던 부끄러운 내 모습이 슬며시 떠올랐다.


"얘들아, 그 동안 이모가 오해했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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