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여행

by 단미

2024년 5월 3일 아침 9시 50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적은 객실수에 비해 수요는 많은 해랑열차 예매에 성공해야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팔순 기념으로 계획한 가족 여행이 나의 손에 달려 있었다. 해랑열차는 한국철도공사 산하 코레일관광개발에서 도입한 숙박형 관광열차로 유람선 대신 철도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레일크루즈라고 불린다.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인데 기차 안에서 잠도 자고 유명 관광지와 맛집 예약까지 다 되어있다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패키지상품이 이렇게 근사한 데다 모처럼 가족이 일정을 맞춘 터라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두근두근.


휴대전화 시계 숫자가 10:00로 바뀌자마자 빠르게 클릭했지만, 다음 단계로 가는 내 손은 너무 느렸다. 목표했던 패밀리룸은 이미 마감됐고 스위트 역시 다 차버려서 스탠다드와 디럭스로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다. 잠시 후 결제 방법과 주의 사항을 포함한 예약 확인 문자가 도착했다.


“성공했어!”


패밀리룸을 놓쳐서 아쉽긴 하지만 몇 개 되지 않는 객실 예약에 성공한 게 어딘가. 휴대전화 너머로 언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우리는 벌써 들떴다. 일정이 맞지 않은 남편과 외국에서 일하느라 한국까지 오지 못한 막내를 빼고 3대가 함께하는 첫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제 남은 건 짐 싸기다. 원래 여행은 짐 쌀 때가 가장 설레는 법. 결혼하고 남편 덕에 매년 두어 차례 해외여행을 꼬박꼬박 갔던 나지만 여행 짐을 쌀 때는 여전히 신이 난다. 예상치 못한 일이 여행지에서는 영화처럼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랄까.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출발일이 되자 우리는 일찌감치 서울역으로 모였다. 강원도 인제에서 출발해 춘천에 사는 언니네 집에서 하루 묵으신 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온 언니 부부, 조카, 그리고 집이 인천이라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까지 수월하게 간 나까지 모두 여섯 명이었다.


레일크루즈 일정은 길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남원을 지나 순천, 부산, 경주를 찍고 동해로 올라오는 U자형 코스를 2박 3일동안 보낸다. 기찻길이 전국에 깔린 덕에 만들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머무는 곳도 광한루, 순천만 국가정원, 천마총과 국립경주박물관, 동해 촛대바위 등 각 지역에서 이름난 관광지다.


기차에서 내려 해당 관광지까지 오가는 건 전세버스를 이용했다. 갈 때는 관광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해설사가 동행을, 관광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승객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승무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피곤에 지친 승객들 반응이 신통치 않아도 노련한 승무원은 매끄럽게 진행해나갔다. 해랑열차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해 주거나 상품이 걸린 퀴즈를 내기도 하는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언니와 나는 손을 번쩍 들며 적극 참여하여 몇 가지 상품을 챙기기도 하였다. 상품이란 게 코레일 사내몰에서만 파는 제품이라 시중에서는 살 수 없는 배지 같은 거지만 무릇 여행이란 작고 사소한 것조차 즐거운 시간 아니겠는가. 사진을 찍어 막냇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우리가 상품을 받았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식당은 가는 곳마다 맛있고 친절하여 그야말로 ‘엄선’했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해랑열차 소개에 미식관광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해진 일정을 마치고 기차로 돌아오면 휴게실에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와 과일, 맥주, 와인,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인기 많은 과일이 금방 동나자, 휴게실 한편에 마련된 작은 주방에서 승무원이 부지런히 과일을 깎아 채워 넣는다. 언니와 나는 객실에서 쉬고 계신 부모님께 과일과 따뜻한 차를 날라드리고 휴게실에서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떤다. 승객들이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도록 애쓰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패키지상품이라니, 700만 원이 넘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우리가 해외여행이 아닌 레일크루즈로 국내를 여행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가진 고소공포증 때문이다. 아버지는 비행기를 탄다는 상상만 해도 이미 손에 땀이 찰 정도로 고소공포증이 심하시다. 한 번은 언니가 제주도를 가자며 억지로 비행기를 태워드린 적이 있는데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타러 가는 연결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겁이 잔뜩 난 아버지가 사람살리라고 소란스럽게 하셔서 언니가 고생깨나 했단다. 성실하기 이를 데 없으셔서 일은 열심히 하시는 반면 삶을 즐기는 데는 관심이 없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도 덩달아 발이 묶이셨다. 어머니는 해외가 아니더라도 가끔 여행을 가고 싶으신 눈치였는데 몸이 워낙 약해서 혼자 멀리 가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데다가 아버지만 두고 가는 건 원치 않으셔서 여행 경험이 거의 없으시다. 그나마 언니네 부부가 막냇동생을 만나러 호주에 갈 때 모시고 가서 어머니도 해외여행이라는 걸 경험해 보실 수 있었다. 이번에도 가까운 일본에 다녀오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잔치 주인공인 아버지가 비행기는 절대 못 탄다고 손사래를 치셔서 어쩔 수 없이 레일크루즈가 당첨되었다.


며칠 전 순서 없이 쌓인 책을 정리하다 낯선 USB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 풍경이 새겨진 카드 모양이라 일할 때 쓰던 UBS는 아니었기에 이게 대체 어디서 난 걸까 집어 드는 순간 레일크루즈 여행이 떠올랐다. 해랑열차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관광지에서 보여준 즐겁고 신난 모습을 틈틈이 사진 찍어두었고 마지막 날 밤늦게까지 편집해서 USB에 담아 기념으로 준 것이었다.


‘벌써 일 년 전이네.’


그때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여행 마지막 날에 하차를 앞두고 우리와 2박 3일을 함께 했던 친절한 승무원이 언니와 나를 따로 불렀다. 퀴즈에 적극 참여해 주고 고생하는 승무원들에게 음료수를 사주던 일이 고마웠다며 해랑열차 로고가 새겨진 머그 두 개를 선물로 주었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승무원이 고생은 다 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고맙다니. 마음이 찡했다.


기차는 출발했던 서울역까지 도로 가지만 언니네 가족과 부모님이 춘천으로 가야하기에 우리 모두는 청량리역에서 먼저 내렸다. 플랫폼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기차에 남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입 모양으로 인사하며 함께 손을 흔드는데 괜히 눈물이 차올랐다. 가족 단위로 온 터라 승객들끼리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과 헤어지는데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버지 팔순 기념으로 해랑열차를 고른 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친지분들을 불러 모아 호텔에서 근사한 밥 한 끼 대접하는 잔치는 아버지 성향에도 맞지 않거니와 해랑열차가 없었으면 우리가 직접 여행코스를 짜고, 누군가는 운전대를 잡아야 하며 모든 가족 입맛에 맞는 맛집을 검색하는 수고를 들였을 텐데 해랑열차 덕에 즐기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지. 물론 이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건 700만 원이 넘는 큰돈을 기꺼이 부담한 막내 덕분이다. 큰 돈이니 세 자매가 갹출하자고 했지만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니 돈이라도 내야겠다고 우긴 아주 기특한 동생이다.


청량리역에서 헤어지기 전에 여행을 마무리하며 저녁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신지 한마디 하신다.


“키울 땐 셋이라 힘들었는데 키우고 나니 여럿이라 좋네.”


효도가 별건가. 이렇게 함께 웃으며 밥 먹고 시간을 보내는 거지. 이번에는 해랑열차 덕에 거창한 효도를 한 기분이다. 3대가 함께 하는 여행, 다음엔 언제 또 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제43회 전국한밭문학공모전 산문 부문에 응모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