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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을 아시나요

by 단미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서울도 마음 먹고 갈 만큼 생활권이 아주 좁았던 나는 서른 살이 넘도록 아래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흔하디 흔한 경험도 없고, 광안리며 해운대며 한 번씩은 가볼 법한 부산조차 출장으로 처음 발 디뎠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평일 낮에 서울역에서 대전행 KTX를 탄 것도 출장 때문이었으며 대전이라는 도시에 가는 첫 경험이었다.


무릇 기차라고 하면 공기를 가득 채운 설렘에 함께 젖어 들어 괜히 신이 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도 마냥 좋기만한 존재가 아니던가. 적어도 내겐 그런 느낌이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 춘천이라 주말에 서울로 놀러갈 때면 주로 기차를 탔고, 대학교 MT도 기차를 타고 강촌이나 가평엘 갔으니 대체로 약간 들뜬 분위기가 내 기억 속 기차다. 그런데 대전행 KTX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차에 오르니 나도 모르게 설레임이 솟아나고 있었는데 도서관보다 더 적막함이 감도는 객실 분위기에 설레임은 빛보다 빠르게 날아가버렸다.


‘이 무거운 공기는 뭐야. 명색이 기차인데 이런 분위기는 아니지 않나?’


대전행 KTX에선 오히려 내가 이방인이었나보다. 평일 낮에 이 기차를 탄 사람들은 직장인이거나 업무차 이용한 것이 대부분일 테고 대전역까지 가는 짧은 한 시간 동안 눈 붙이기 바빴을 터. 그들에게 설레임이 웬말이겠는가. 하긴 직장인 신분으로 출장이란 타이틀을 단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눈은 붙이지 않았지만 출장이 뭐 그리 즐거운 일이라고.


대전행 KTX 분위기가 아쉽게 느껴진 이유는 경춘선을 타고 다닌 기억과 너무 달라서다. 지금은 ITX-청춘 이라는 이름으로 운행되는 기차의 전신이 경춘선이다. KTX도 ITX도 아닌 그냥 경춘선. 당시 경춘선을 달리던 기차 중 가장 빠른 건 무궁화호였고 춘천역에서 출발하여 종착역인 청량리역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통일호와 비둘기호라는 정겨운 이름을 가진 기차는 무궁화호보다 느리고 그만큼 가격도 쌌다.


경춘선이 복선화 작업을 거쳐 전철과 ITX가 함께 다니는 길로 바뀌면서 기차 객실은 더 쾌적해졌고 속도도 빨라졌지만 어쩐지 경춘선이란 이름일 때 기차가 가진 낭만은 사라진 듯 하다.


경춘선 기차표를 예매하려면 역에 직접 가야했고 출발하려는 날짜와 시간을 역무원에게 말하면 종이승차권을 건네주었다. 종이승차권은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되었다. 내가 절차대로 발급받았다가 잃어버렸음을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면 소중히 보관하던 승차권을 들고 플랫폼에 줄을 선다. 역무원이 승차권을 일일이 확인하고 확인했다는 표시로 구멍을 뚫어주기 때문.


사람이 많은 주말엔 기차표를 확인받으려는 줄이 길어서 플랫폼을 통과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지루함과 설레임이 묘하게 공존하는 신기한 시간이다. 줄이 짧아질수록 설레임이 점점 커지고 이 기다림 끝엔 뭔지 모를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말이다.


경춘선이 ITX-청춘 열차로 바뀌고 나서 처음 타러갈 때 코레일 앱을 휴대전화에 다운 받아서 직접 발권과 결제를 하고 승차권도 휴대전화에 저장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서 아주 편했다. 예매를 하러 역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지만 챙겨야할 종이승차권도 없고 확인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저 나 혼자 일사천리로 해결하고 플랫폼에 들어섰을 땐 기차가 주던 설레임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사라진 건 그 뿐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기차 안에서 파는 삶은 달걀과 우유를 사먹으며 추억을 곱씹으려 잠도 안 자고 기다렸는데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간식 카트를 끌고 다니시는 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쩐지 햄버거나 주전부리를 챙겨온 승객들이 많더라니…….


ITX-청춘 열차는 경춘선처럼 객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입석을 받지 않았다. 덕분에 편안하게 갈 수는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되었다. 그에 비하면 경춘선은 조금 왁자지껄했달까. 타고 있는 사람도 워낙 많았고 지금처럼 휴대폰에 몰입하기 전이라 이야기 나누며 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평이나 강촌으로 MT 가는 대학생들이 객실 전체를 예매하면 그야말로 난리였다. 통기타를 치며 다같이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젊음을 한껏 뽐내는 모습이 허락되는 시기였고, 그건 기차 안이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내게 기차는 그런 공간이었다. 즐겁고 신나고 조금 소란스러워도 괜찮으며 그 분위기 속에 묻어가노라면 나의 여행도 덩달아 흥겨워지는 곳.


마흔 중반이 된 지금은 자동차를 운전해서 이동하는 경우가 더 많고 경춘선이라는 기차도 사라졌지만 내 마음 속 기차는 여전히 운행 중이다. 추억이라는 승객을 가득 채운 채로.


*제 11회 철도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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