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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시험 합격한 게 뭐 대단하다고

by 단미

일주일 정도 벼락치기해서 자격증 필기시험을 봤다. 기능사 시험이라 아주 어렵지는 않았는데 강의를 다 듣고 복습하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빠릿빠릿하고 집중력 좋은 사람이라면 사나흘로 충분할텐데 나는 일주일 동안이나 매대기를 쳤다.


책 들여다본지 15분 지나면 두리번거리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30분이 지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갔다 한다. 정말이지 산만함도 이런 산만함이 없었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짧은 기간 공부해서 짠 하고 붙고 싶었는데 이건 공부하는 척만 하고 앉아있으니 이래놓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어쨌든 시험일은 다가왔다. 마침 시험장 2분 거리에 카페가 있어서 그 곳에서 입실 시간 전까지 복습할 수 있을 것 같아 일찍 출발했다. 공부가 좀 부족하긴 했어도 포기는 하지말자는 마음이었다. 커트라인을 넘으려면 적어도 아는 건 틀리지 말아야 했기에 부지런히 책을 뒤적이고 외운 내용을 중얼거리며 복습했다. 제법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 모습이 조금 만족스러웠다면 민망하려나.


국가자격증 필기시험은 컴퓨터로 보는데, 모니터에 문제가 뜨고 마우스로 답을 클릭하는 CBT 방식이다. 그래서 문제를 다 풀고나서 답안지 제출이라는 메뉴를 클릭하면 가채점 점수가 바로 나온다. '합격 여부를 아직 몰라'라고 핑계댈 수가 없는 실시간 현황이다. 나는 아는 문제는 풀고 모르는 건 신중하게 찍으며 빠트린 문제가 없는지 여러 번 검토한 끝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답안지 제출 버튼을 눌렀다.


답안지 채점 중을 알리는 로딩 표시가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합격 메시지가 빨리 뜨길 바라는 마음이 수없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66점.

커트라인 60점을 넘어 간신히 합격했다. 고득점은 아니지만 합격은 합격이다. 난 염치있는 사람이라 공부 대비 이 점수면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다. 합격한게 어딘가. 감사할 따름이지.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나의 공부를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합격 소식을 알렸다. 부모님은 대단하다며 축하금을 보내주시고, 독서모임 멤버들은 역시 엘리트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언니도 남편도 형부도 모두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이게 뭐 대단한 시험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면서도 내심 반가운 마음이다. 첫 걸음마를 뗀 아기가 온 진심이 담긴 격려의 박수를 받는 기분이랄까. 난이도가 높거나 경쟁이 치열한 시험은 아니었어도 이 시험을 위해 애쓴 나의 수고가 토닥여지는 느낌. 사방에서 보내온 다정함이 홀가분해진 나를 에워싼다.


나는 뭐든 열심히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노력이라는 걸 하면 이런 좋은 반응이 뒤따른다는 걸 처음 겪었다. 제법 성취감도 느껴졌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충분한 노력과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와 격려 가득한 반응, 세 가지가 선순환이 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던걸까. 그 달콤함을 이제야 알게 된 난 못내 아쉽다.


하지만 내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등생은 되지 못할 것 같다. 공부머리도 없고 전략적으로 시간관리하며 공부하는 재능도 없는 건 마찬가지일테니까. 다만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으니 중간 정도 성적은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시절 하지 못했던 공부의 재미를 중년이 되어서야 알아간다. 필기 시험 다음 단계는 실기 시험이다. 공부에 재미들린 이 기세를 몰아 실기 시험도 한 번에 합격해보련다. 실기 시험 준비에 필기 시험 못지 않은 응원을 기대해도 욕심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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