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시작한 거 맞겠죠?”
문 손잡이를 돌리며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을 쓰는 다른 카페와 달리 사무실 문처럼 생긴 무거운 문을 열어야 비로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아담한 공간. 이 곳은 독서모임을 하는 우리가 함께 모여 책 읽기로 한 장소다.
자그마한 건물이 교회와 붙어 있는데다 외관도 여느 카페같지 않아서 오가며 보긴 했어도 카페인 줄 전혀 몰랐던 곳. 하지만 알고 나니 그런 독특함이 오히려 뭔가 비밀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건 아닐까,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잠시나마 상상하게 된다.
문을 여는 순간 만나는 환하고 밝은 공간이 짙은 밤색으로 차려 입은 외관과 전혀 다른 느낌이다.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과 투박한 인테리어가 정겹다.
우리는 음료와 스콘을 주문하고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가지런히 정돈된 의자와 테이블이 우리를 반겨준다. 나와 함께 온 일행은 혜진님으로, 우리집 바로 앞 건물에 살고 있어 같이 걸어왔다. 의자에 앉자마자 자동차 소리가 나는 듯 하여 창 밖을 내다보니 우리보다 조금 먼 거리에 살아서 차를 타고 온 민숙님이 주차를 하는 중이다.
예쁜 잔에 담긴 커피와 넉넉한 크기의 스콘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볼 일을 마치고 온다던 나머지 일행들도 곧 도착할 터다. 먼저 온 우리 셋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모여 책 읽는 시간이 두 번째인 우리는 낯설고 신선한 이 공간이 무척 좋았다. 상냥한 미소로 맞아주시는 사장님의 친절함이 편안하고 오전 시간엔 손님이 거의 없어 조용한 분위기가 우리에겐 안성맞춤이어서다.
숨은 보석같은 이 카페를 소개한 사람은 희라님이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함께 오자며 종종 소개해주는데, 희라님이 소개해준 곳은 실패한 적이 없다. 우리에겐 좋은 곳만 소개해주려는 희라님의 기준과 그 기준이 우리 취향에 잘 맞아서 일게다.
한참 책을 읽다 툭 하고 나를 건드리는 바람이 느껴진다. 작은 창문으로 포근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들어오는데 때때로 존재감을 알리듯 지금처럼 무게를 실어오기도 한다. 그럴 땐 바람이 건네는 부드러운 인사에 화답하듯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본다. 작은 창 위부터 벽 끝까지 올라간 통유리 너머엔 깨끗한 하늘과 반짝이는 나뭇잎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오월이 가진 풍경을 놓치지 말라고 바람이 신호를 보내주었나보다.
“여긴 정말 좋은 곳이에요.”
민숙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맞은 편에 앉은 민숙님도 바람의 존재를 느낀 모양이다.
“이런 곳에서 같이 책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함께 모여 책읽는 시간을 좋아하는 혜진님이 뒤이어 말했다.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고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 사라락 책장 넘기는 소리, 은은한 커피향... 이 시간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미현님, 효순님, 희라님이 차례로 도착했다. 인원수에 맞게 주문된 커피잔이 놓이느라 테이블 위를 정리하는 작은 부산함이 이어지고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도 오간다.
이 다정한 사람들은 2024년 4월 시작해서 일년을 꼬박 채운 독서모임 멤버들이다. 삼 년이 넘는 시간동안 혼자서 책 읽고 후기를 쓰다보니 내 생각에 갇히는 것 같아 독서모임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완고해지기보다 유연해지고 싶은데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면 사고가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그 출발이었다. 모집은 맘카페를 통해 동네 어머니를 대상으로 하였다.
마흔이 넘도록 모임을 직접 만들고 이끌어 본 경험이 없는 내겐 큰 모험이었다. 하루이틀 망설인 끝에 일단 저질러보자는 마음으로 모집글을 올렸는데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검증 절차 없이 댓글만으로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 좋을 수 있다니. 2024년 행운은 여기에 다 쓴 모양이다.
성품도 좋고 누구 하나 게으르지 않으며 부지런히 자기개발을 하는 어머니들. 고르고 골라도 이런 조합을 만들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 일년 동안 잡음 없이 만날 수 있었겠지.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번으로 마지막 주 금요일에 만난다. 오늘처럼 모여서 책 읽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 참석은 자유다. 다들 매일 책 읽는 시간을 가질텐데 그게 오전이다보니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한게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혼자 읽을 때와 다른 느낌이다. 약간 긴장감이 들기도 하고 독서모임 지정도서 외에 어떤 책을 읽는지 나누기도 한다. 경쟁하진 않지만 책을 더 많이 열심히 읽을 수 있게 자연스러운 동기부여가 된다.
전국 각지에서 나고 자라 이제는 인천 어느 한 동네에 모여 함께 책읽는 우리. 이 근사한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다.
내년 이 시간에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