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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는 작은 행동이 의미없을지라도

by 단미

얼마 전 일하러 간 곳에서는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염색약 재포장을 도왔다. 염색약이 외국 브랜드라 국내 모델 사진이 들어간 케이스를 덧씌우는 게 내가 처음 맡은 공정이었다. 멀쩡히 케이스가 있는데 또다른 케이스를 덧씌울거면 처음부터 내용물만 받아서 포장하면 케이스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다른 공정으로 이동해보니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다. 얇은 비닐 포장까지 다 되어있는 완제품을 전부 다 뜯어서 재포장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맡은 공정이 그 비닐을 다 뜯는 일이어서 알게 되었는데, 뜯긴 비닐은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었다. 한 시간 남짓 작업하고나니 비닐을 담기 위해 걸어둔 커다란 비닐봉투는 이미 차고 넘쳤다. 직원은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면 되니 일단 바닥에 버리라고 하였다. 쉬는 시간이 되어 휴게실을 가기 위해 나가려는데 수 백개 염색약에서 뜯겨진 비닐은 공기를 품은 채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휴게실로 이동하려면 비닐을 타넘어가야했다.


그 날 작업한 염색약 갯수는 천 개 가까이 되었다. 이 일이 어쩌다 한 번 있는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것일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놀라움과 동시에 허탈해졌다. 우리 빌라 재활용품 수거함이 넘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나는 며칠 우울했다. 수많은 공장에서 하루에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두고 집에서 하는 분리수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애써 플라스틱과 종이와 비닐을 분리해서 버린다해도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양에 비하면 티끌일 텐데. 분리수거도, 재활용도 부질없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소비하는 것의 대부분이 만들어지고 배송되어 사용하는 모든 과정이 쓰레기를 만드는 길이다. 소소하게는 옷, 신발, 가방, 텀블러, 화장품부터 크게는 인테리어, 건물, 공장, 자동차까지 모두 다 말이다. 내가 사용하는 그 순간을 빼면 만들어지기 위해 그리고 버려지기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그러니 오롯이 환경을 위하려면 옛날처럼 짚을 꼬아 짚신을 만들고 울타리는 나뭇가지를 모아서 치고 꽃과 열매에서 염색원료를 얻는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한지 오래 되었다. 당장 나부터도 자연의 일부로 살아야한다면 자신없다. 한편으론 환경을 위해 산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편리함과 편안함 그리고 수만명을 먹여살리는 일자리는 산업화 덕분에 얻은 결과물이다.


산업화와 환경 보존이 양립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후변화 속도가 더딜 수 있게 노력하는 것 뿐이다. 점점 더워지는 여름을 체감하면 기후 변화가 현실이 되었고 막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재활용을 위해 생활에서 나온 플라스틱과 비닐과 종이를 분리해 버린다. 그 노력이 거대해진 산업화 속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플라스틱이 말끔하게 분해되는 그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를 낮출 수 있는 획기적인 무엇인가가 발명될 지도 모른다. 그 역할은 전문가들께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한다. 아직은 내가 숨쉬는 공간이며 다음 세대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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