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공 열 개 치고 이렇게 힘들어하면 어떡해요.”
테니스 레슨실 매니저가 웃으며 놀려댔다. 테니스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라 공을 쫓아다니지 않고 제자리에서 라켓만 휘두루기면 되게끔 내 앞에 얌전하게 떨어지는 공을 치는데도 힘들었다. 나도 내 체력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포핸드니 백핸드니 하는 기술은 코치에게 배우면서 차차 늘겠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게임을 뛸 수 없다. 공 열 개에 숨이 차는 체력으로는 기술을 제대로 보여주기도 전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게 뻔하다.
이 참에 체력을 좀 키워볼까 싶어 시작한 게 달리기다. 헬스장을 다닐 때도 트레드밀을 뛰긴 했지만 딱히 효과를 보진 못했다. 그래도 달리기 말고는 시도해볼 수 있는 게 없어 다시 해보기로 하였다.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달리기로 이런저런 효과를 봤다는 콘텐츠 등도 나를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데 한몫 했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 돌기를 시작한 지 한 달. 결과는 놀라웠다. 체중은 5kg가 줄었고,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 매일 아침 인바디 체중계에 올라설 때마다 체지방이 쑥쑥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테니스 레슨 때에 공 서른 개를 여유롭게 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올라왔다.
대형 마트에서 장 보고 돌아 오면 너무 지쳐서 일단 쉬어야 했고, 계속 쉬고 싶지만 장본 물건을 정리해야하기 때문에 억지로 일어나야 했던 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벌써 힘들다. 마지못해 겨우 일어난다. 피곤함과는 상관이 없었다. 깨어있는 것 자체가 나를 소진시켰고, 고갈 되는 느낌에 늘 힘이 들었다.
눈 뜨면 바로 욕실로 달려가는 언니, 눈 뜨면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앉고보는 남편은 신기함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벌떡벌떡 일어날 수 있는거지?
달리기를 시작하니 나도 아침에 가뿐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됐다. 전날 꿀잠을 자는 건 물론이다.
이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물건을 정리하고, 저녁 준비를 하고, 저녁 식사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바로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 것까지 쭈욱 이어서 할 수 있게 됐다. 몸이 고갈된다는 느낌도 없고 활기가 가득찼다.
매일 달린 건 아니다. 필라테스와 테니스를 하지 않는 날에만 달렸는데 그게 주 4회 정도고, 한 번에 6km를 뛴다. 처음에 3km도 버거웠지만 이제는 6km 정도 뛰어야 개운하게 느껴질 정도다.
오늘은 오후에 비가 잠시 내려서 내내 습했다. 달리기를 하러 나간 밤 10시에 영상 7도. 습도가 높아 포근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날이다. 벌써 여러 번 풀렸고, 또 풀려버린 운동화 끈을 묶느라 잠시 숨을 고르며 달리기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를 생각해본다. 달리기 덕분에 체력이 좋아지니 버거웠던 일상이 즐거워지고 나는 더 생기있는 사람이 되었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성취감과 다가올 날을 향한 기대감으로 가득해진다.
달무리를 두른 노란 달과 함께 걷고 달리는 이 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