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을 나와서 자립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가 쉽지 않다고 느껴진다. 자립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만의 탁월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인데, 그 근간을 살펴보면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인터뷰나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좋아해서 계속하게 되고, 계속하니까 잘하게 되고. 좋아하니까 성장이 더뎌도 포기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탁월하게 되고. 이 부분은 결국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부분인 것 같다.
퇴사한 지가 벌써 2년이 되어가는 시점이 되었는데, 요즘 들어 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릴 적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들을 끄집어내 보기로 했다.
나는 어릴 적에 달리기,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를 참 좋아했다. 달리는 것이 좋았던 이유는 달리기만 하면 남을 다 제치고 1등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은 그냥 이유 없이 좋아했는데, 아마 그림을 그릴 때 느끼는 그 몰입감을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는 쉽게 그린 그림도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니까 그 맛에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피아노 치는 것은 예쁜 소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고, 연주하는 동안에 몰입감이 깊은 것 때문에 좋아했다.
또 하루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떡제본 하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집에 널브러져 있는 공책과 이면지를 모아 떡제본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인형이 만들어보고 싶어서 집에 있는 행주 천을 잘라 곰돌이 얼굴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지점토로 얼굴 형상을 빚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굿즈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에 굿즈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종이로 캐릭터 키링을 그려 두꺼운 박스 종이에 붙여서 만들기도 했고, 못 쓰는 공책을 잘라 청바지 천을 붙여 나만의 커스터마이징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집에 있는 나무판자를 잘라 책꽂이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꽤 괜찮았다.
한 번은 방 안의 벽지를 다 뜯어내고 거기에 수채화 물감으로 벽화를 그렸던 적도 있다. 벽화의 작품 제목은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신기하게도 집안에서 나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도 벽지를 뜯어내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해 혼나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짧은 일기를 써놓곤 했는데,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고 할 수 있을까? 글쓰기 숙제가 나오면 남들보다 글을 쉽게 쓰는 편이었는데, 쓱쓱 써 내려간 글 솜씨를 학교 선생님들이 칭찬하며, 한 국어 선생님은 시인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공부도 곧 잘했었다.
영어는 잘 못했는데,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영어 성경을 필사하고, 외우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하루 종일 영어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야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지치고 지겨워 했다. 달리기 시대표 육상 선수가 되었는데, 훈련을 받다가 너무 힘들어서 2년 만에 선수 생활을 그만둔 것, 영어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질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졸업 작품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작업 퀄리티를 끓어 올리려 노력하다가 이제는 그림이 질려서 그리지 않는 것, 피아노도 어느 정도의 실력 이상을 뚫고 올라가지 못한 것. 좋아하는 것이란 어떠한 환경에서도 불구하고 계속할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만큼 좋아하는 것은 없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지금 어쨌든 계속 글을 쓰고 있고, 인스타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가끔씩 피아노도 두드린다. 생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굿즈 만드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 과거의 뜨거운 열정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상태를 비유하자면 노부부의 사랑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뜨거움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계속하고 있는 것. 그것이 열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적어둔 것을 요약해 보니, 나는 몰입감을 주는 활동을 좋아하며, 무언가 창작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관해서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는 아직도 지쳐있는 것인지(?) 나 자신이 내적 동기보다 외적 동기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 만으로 동력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말이다. 먹고사는 현실의 문제 때문에 더 그런 듯하다.
어쨌든, 좋아했던 것을 끄집어내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좋아했던 감정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니까.
오늘은 내가 잃어버렸던,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한 두서없는 글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