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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J Jan 07. 2021

자궁과 이별을 준비하며<1>

잘가라, 내 몸의 일부였던 자궁아

"이번 달도 건너뛰었네."


10대 부터 20대 초반까지 내가 굉장히 자주 했던 말이다.

그랬다. 난 초경을 중학교 1학년 될때쯤 시작했는데, 그땐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앞으로 최소 30년은 계속하게될 '생리'라는 대업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생리통이 있지도 않았고 그 당시 엄마 세대에는 나름 획기적인 발명품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생리할때도 편해졌네! 라며 감탄하던 - '울트라 슬림 생리대'라는 것이 있어서 그다지 불편함이 느끼지 못했으니까.

꽤 키도 크고 이미 2차 성징 정도는 충분히 끝난 고등학생 시절 부터 내 생리는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두어달 쯤은 건너뛰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었고, 어쩔때는 일년에 한 두번 으로 그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공부 때문에, 입시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내 주변 친구들도 그정도 생리불순 쯤은 늘상 있는 일이었으니까.


20대가 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엄마는 늘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큰 딸년 생리가 늘 불규칙한 것은 물론이고 간혹 여드름이 나고 얼굴빛이 맑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그래서 어느 해 여름방학때 쯤 엄마는 나를 한의원으로 데려갔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몇달치 한약을 선불로 끊어 먹게 했다. 몇달동안 한약을 먹는 일은 고역이긴 했으나, 개학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한약은 되도록 빠지지 않고 먹었는데, 그 이후로 어쩌다 한달 정도는 건너뛰기는 했지만 꽤 순조롭게 내 생리는 이어졌다. 

photo created by freepik


"이번에는 또 뭔데?"


그렇게 삼십대 중반쯤 되었는데, 한번은 생리를 시작한 후에 보름이 넘도록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생리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는데, 주변에서 빈혈이 격정된다며 철분제를 먹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매달 하는 건데 평생 이렇게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게 생리말고 또 있을까 싶다. 정말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 산부인과라는 곳인데, 결국 보름째가 되던 날 회사 근처 산부인과에 찾아갔다. 상담을 한 의사는 생리가 끝나자마자 다시 오라고 했고, 이틀 후 쯤 생리가 끝나자 마자 다시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음... 벌써 자궁 내벽이 부어있네요. 또 생리가 시작되려고 하네요."라고 했다.

보름을 했는데, 또 시작이라니. 이럴수가 있는건가. 어안이 벙벙했다.

자궁내벽증식증이라 이름붙여진 이 질환은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질환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단한 '시술'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재발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퇴근 후 병원에서 30분 정도 시술을 받고 한시간여 링거 주사를 맞고 가뿐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또, 뭐 별 걱정없이 잘 살았다. 


사십대가 되어서 결혼이란 것을 하게되었다. 말 그대로 '매우 늦은 결혼'이었다. 상견례를 하고 날짜를 잡고 나니 양가 부모님의 관심사는 과연 우리가 아이를 갖는 일에 관심을 - 혹은 노력을 - 할 것인가, 였다. 

예비부부였던 우리는 우리 둘의 나이와 경제력, 앞으로 인생계획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론은, '아이가 없는 가족'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가지는 하고 넘어가야 했으니 바로 '신혼부부 검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 준비를 하며 가장 헛되게 쓴 돈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하지만 그 와중에 알게 된 것이 있으니, 내가 매우 임신 가능성이 높은 몸이라는 것과, 또 한가지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은, 의사가 나에게 설명해준 바에 의하면 나팔관에서 난자가 나와서 수정이 되지 않으면 체외로 배출이되어야 하는데 배출이 안되고 체내에 쌓이는 질환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턱과 입 주위에 여드름이 생기곤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주사와 약으로 치료가 된다고 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혹시 출산 계획이 있으면 서둘러요. 빨리 시작해야되요."


생리불순과 자궁내벽증식증, 다낭성난소증후군, 그리고 몇년에 한번씩 나타나던 질염과 두어번의 경미한 방광염까지 나의 자궁에는 온갖 질환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럴때 마다 별 감정 없이 치료받으라는 대로 잘 받고 잘 넘어왔다.  

그리고 사십대 후반으로 달려가며 폐경기가 다가오고 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폐경과 갱년기를 무난히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다가 지난 봄, 꽤 일정하게 이어져오던 생리가 나오지 않았다.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내가 굳이 생리 한번 안 한 것으로 병원까지 간 것은, 혹시 폐경이 된 것인가 해서였다. 여러가지 감정적인 소용돌이와 신체적인 변화를 겪는다고 하는 폐경기. 잘 넘겨야 되지 않겠나.

그런데, 의사는 의외의 말을 했다.

"자궁에 근종이 있네요. 3개 정도가 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이번엔 또 뭔데? 나한테 그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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